선진국들의 극심한 불경기 여파로 물가상승률이 6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글로벌 경제에 디플레이션(Deflation·경기침체 속의 물가 하락)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각국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는데도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신흥국들의 경제 엔진마저 빠르게 식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저(低)성장이 장기화되고 있는 한국도 수요 위축으로 올해 물가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 2% 미만으로 떨어질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27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4개 회원국의 1분기(1∼3월) 평균 물가상승률은 1.7%로 지난해 4분기(10∼12월) 2.0%보다 0.3%포인트 내렸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의 물가상승률은 2011년 3분기 이후 6개 분기(18개월) 연속 하락했다. 1971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장 기간이다. 4월에도 통계가 집계된 31개 회원국 중 멕시코, 노르웨이 2곳을 제외한 29개국에서 물가상승률이 전분기보다 떨어졌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이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푼 막대한 자금이 소비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수요 위축’으로 인한 물가상승률 하락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 특히 재정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에서는 물가가 아예 마이너스로 떨어진 국가들이 늘면서 디플레이션 공포가 고조되고 있다. 수요 침체로 물가가 하락하면 기업의 생산이 줄고, 이는 다시 고용 및 소비의 감소로 이어져 다시 물가가 하락하는 ‘악순환(deflationary spiral)’을 일으킨다.
한국에서도 이례적인 저물가 현상이 이어지면서 올해 물가상승률이 1%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대 물가상승률은 외환위기의 영향권에 있던 1999년(0.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통계청의 1분기 가계 동향을 보면 전국 가구의 약값 및 병원비 지출은 1년 전보다 2% 이상 감소했다. 아파도 참고 버틸 정도로 불황이 심화되고 내수가 위축됐다는 뜻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글로벌 경제의 물가상승률이 둔화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물가 하락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이런 흐름을 뒤집으려면 큰 폭의 규제 완화 등 공격적인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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