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30년 장기독재를 해오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물러났다. 1월부터 계속된 대규모 시위, 이른바 ‘이집트 혁명’에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시위에 불을 붙인 인물은 당시 구글 중동지역 마케팅 책임자였던 와엘 고님(사진)이라는 이집트 청년이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칼레드 사이드’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해 무바라크 독재를 비판하고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칼레드 사이드는 2010년 6월 심하게 구타당한 모습으로 의문사해 이집트 혁명의 상징이 된 청년이다. 뉴욕타임스는 고님을 ‘이집트의 체 게바라’라고 불렀고, 타임은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했다.
최근 그가 한국을 찾았다. 콘퍼런스 참가, 강연 등의 일정도 있었지만 그는 무엇보다 “한국의 인터넷 활용 교육을 보고 싶었다”고 했다.
○ 인터넷 교육으로 근본 변화 도모
그가 최근 시작한 일은 나바닷이라는 교육사업을 하는 비정부기구다. 인터넷을 이용한 교육방송을 만들어 한국의 EBS와 비슷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집트 혁명 과정에서 언론은 사회에 단기적으로 큰 영향을 주지만 근본적, 장기적인 변화는 교육이 만든다는 것을 느꼈다”며 “페이스북과 인터넷이 이집트에 부족했던 언론의 역할을 했으니 이제 인터넷을 통한 교육으로 장기적 변화를 준비할 때”라고 말했다.
인터넷 선진국인 한국을 방문한 고님은 29일 구글코리아의 소개로 이태원 초등학교를 찾았다. 이 학교는 태블릿PC와 같은 스마트기기를 수업에 활용한다. 4학년 학급의 미술시간. 그는 여러 차례 학생들에게 “이런 기계를 사용해서 공부하는 게 좋니, 아니면 연필과 공책으로 공부하는 게 좋니?”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모두 태블릿PC를 선호했다. 반응도 빠르고, 필요한 정보도 찾기 쉬워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집트에는 교사와 학교가 부족하다”며 “나바닷은 이를 대신해 누구라도 쉽게 자신의 지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도록 동영상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인터넷으로 퍼뜨리는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 혁명은 마케팅
고님은 쿠바혁명의 주인공이었던 체 게바라와도 비교되지만, 실제로는 극히 평범한 30대 초반의 청년이다. 다이어트를 고민하고, 전자제품 사는 걸 좋아한다. 영웅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그는 “나뿐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이집트 혁명에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혁명이 전과 달랐던 것은 과거에는 묻혀버릴 사람들의 스토리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는 혁명에 마케팅 개념을 도입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퍼뜨릴 때 소수의 얼리어답터 대신 대중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과거 혁명에서 열성적인 활동가가 아니라 겁먹고 숨죽이던 일반 청년들을 참여시킨 것이다. 백화점이 상품 샘플을 나눠주듯 처음엔 재미 삼아 익명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사진을 올리게 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사진을 더 크게 소개하면서 사용자 사이의 경쟁을 유발했다. 인터넷 서비스를 성공시키는 공식이 민주화 운동에도 쓰인 셈이다.
고님은 “이런 방식이 교육에서도 성공해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