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온라인 숙박중개 벤처기업 ‘코자자’를 창업한 조산구 대표(49)는 분통을 터뜨렸다. 나이가 더 들었다고 창업 지원을 받을 기회가 줄어드는 게 말이 되느냐는 얘기였다. 코자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의 한옥 숙박예약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기업이다. 지난해 2월 창업한 뒤 투자를 받고자 창업지원기관들을 찾아다녔지만 여기저기서 나이를 물었다. 지원을 받으려면 39세 이하여야 한다고 했다.
“왜 39세냐?”고 물었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조 대표는 어렵사리 투자를 받았다. 정부 지원이 아닌 민간 투자를 유치했다.
○ 하룻밤에 청년에서 시니어로
창업지원기관의 경우 ‘청년’은 39세에서 끝난다. 40번째 생일을 맞는 순간 청년은 갑자기 ‘시니어’가 된다. ‘시니어 창업 지원’은 지원금의 절대 규모가 청년 창업 지원금에 한참 못 미친다. ‘기업가정신’을 보고 지원하는 청년 창업과는 달리 시니어 창업 지원은 보유 기술 등을 따지는 등 지원 조건도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중소기업청이 2월 발간한 ‘2013년 창업지원사업 백서’에 따르면 올해 만 39세 이하 창업자에게는 약 2170억 원이 지원된다. 하지만 만 4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창업 지원금은 약 49억 원에 불과하다. 이는 중기청과 그 산하 기관, 각 지방자치단체의 창업지원제도를 망라한 수치다.
정부가 창업 지원에 연령 제한을 두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부터다.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청년에 한정한 지원제도가 생긴 것이다. 청년과 시니어를 차별하는 것도 의아하지만 중장년 창업자들은 “무엇보다 40세라는 연령 제한 기준의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중기청 김성섭 창업진흥과장은 “2010년 전후로 청년 창업이 크게 늘었다”며 “20, 30대를 청년으로, 40대 이상을 중년으로 부르는 사회적 통념에 따라 기준을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 점점 늘어나는 격차
2011년 약 479억 원이던 청년 창업 지원금은 올해 약 2170억 원으로 4배 이상으로 늘어났지만 시니어 창업 지원금은 같은 기간 약 73억 원에서 49억 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최근 정부가 ‘창조경제는 곧 창업경제’라며 청년 창업 지원을 늘리고 있어 앞으로 이런 연령별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니어 창업 지원이 기술과 경험을 살리는 창업보다 자영업 지원으로 변질되는 것도 문제다. 중기청의 시니어 창업지원제도는 자영업을 관할하는 소상공인진흥원이 운영한다.
대기업 연구원 출신으로 2010년 화학공업 재료를 개발하는 업체를 창업한 장치연 씨(50)는 “청년만 창의적이라고 여기며 창업에 나이 제한을 두는 고정관념이 문제”라며 “정부가 이런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는 탓에 중년 창업지원 정책이 자영업에만 몰려 있다”고 말했다.
물론 경제 호황기를 거친 세대와 달리 외환위기 이후 만성적인 저성장을 겪는 현재의 20대를 배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데는 많은 이가 동감한다. 하지만 이를 ‘나이 차별’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예를 들어 실패 확률이 더 높고, 과정이 힘들지만 성공하면 파장이 큰 과제에 도전하는 기업가를 우대하라는 것이다. 이러면 굳이 연령으로 차별하지 않아도 청년 창업을 자연스레 북돋울 수 있다. 중년층이 상대적으로 안정지향적이기 때문이다. 또 경험을 바탕으로 도전정신까지 갖춘 능력 있는 중년 창업가들도 끌어들일 수 있다.
KAIST 이민화 교수는 “미국 한국 모두 평균 창업 나이가 39세인데 이 나이를 기준으로 청년, 중년을 나누는 건 창업을 활성화하는 데 걸림돌”이라며 “나이 제한 대신 창업 아이템의 경쟁력을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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