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3년 2개월 만의 재입성입니다. 10m도 떨어지지 않은 건물인데도 돌아가는 데 어찌 이리 오래 걸렸는지…. 감개무량합니다.”
얼굴에 주름이 내려앉은 한 임원이 말했다. 범(汎)현대가의 ‘뿌리’인 현대건설이 옛 현대그룹 본사에 재입성하는 데 대한 소감이었다.
서울 종로구 계동사옥 옛 현대그룹 본관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발자취가 짙게 밴 곳. 현재 입주한 보건복지부가 올해 말 세종시로 이전함에 따라 현대건설이 내년 2월까지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현대건설은 현재 본관 옆 별관에 입주해 있다. 걸어서 수초에 불과한 이 거리를 다시 돌아오기까지 13년 세월 속에 현대그룹의 흥망사가 숨어 있다.
○ 워크아웃 매각에서 다시 입주하기까지
계동사옥 별관종로구 계동 일대 옛 현대그룹 본관 및 별관은 2001년까지만 해도 모두 현대건설 소유였다. 고 정 명예회장이 1983년 무교동 시대를 마감하고 계동에 지은 새 사옥으로 이전하며 지하 3층, 지상 15층짜리 본관과 지상 8층짜리 별관 소유권을 현대건설이 가져간 것.
분란이 생긴 것은 2000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고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 승계권을 두고 소위 ‘왕자의 난’을 벌였다. 현대건설은 고 정 회장 쪽으로 넘어갔지만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에 부실이 발생했다. 부채가 5조4000억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2000년 11월에 1차 부도를 내고, 2001년 5월에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현대건설의 한 임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은행 등 채권단에서는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라’고 주문했다”며 “워크아웃 기업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없었다”고 전했다. 1983년 이후 18년 동안 현대그룹의 ‘심장’이었던 계동사옥 본관을 매각한 건 2001년 말. 본관은 ‘남’이 되어버린 현대차그룹에 팔렸다. 현대건설의 운명이 다시 바뀐 건 2011년. 채권단은 현대건설을 본관 소유주인 현대차그룹에 매각했다. 그해 4월 현대건설로 첫 출근을 한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말이 “감개무량하다”였다. 앞선 현대건설 임원의 감개무량과 다른 듯 비슷하다.
○ 계동사옥 본관 입주 “상징성 크다”
현대건설 안팎에서는 계동사옥 본관 입주가 현대건설 임직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현대건설 임원은 “사무실을 옮기며 사무 환경을 개선한다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옛 현대그룹의 ‘적통’을 이어간다는 상징성이 임직원들에게 더 크다”고 말했다.
계동사옥 본관 15층에는 고 정 명예회장이 타계 직전까지 근무했던 회장실이 있다. 그는 맨손으로 시작했던 기업을 이곳에서 재계 1위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남북경협의 상징이 된 ‘소떼 방북’과 ‘금강산 관광’을 선포했던 기자회견도 이 본관에서 이뤄졌다.
현대건설은 내년 2월까지 본관 입주를 완료한다. 본관 내 5, 6개 층을 사용하며 회사 내 모든 부서가 이전한다. 비게 되는 계동사옥 별관에는 현대건설과 함께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현대엔지니어링이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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