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산봉우리 여섯 개를 둥글게 늘어놓은 ‘화이트 스타’ 로고로 유명한 몽블랑 만년필은 오피니언 리더의 상징으로 통해왔다. 190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문을 연 몽블랑은 1992년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제정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예술가가 아니라 후원자에게 주는 상이다. 2004년부터는 한국인 수상자도 배출되고 있다.
‘제22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몽블랑 최고경영자(CEO) 루츠 베트게 회장(58·사진)을 3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만났다. 후원자를 시상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과거 왕이나 교황이 했던 후원 활동을 대신하는 이들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일 열린 시상식에서는 클래식 음악 및 미술 관련 후원 활동을 펼쳐 온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67)이 수상했다.
럭셔리 브랜드의 사회공헌 활동은 국내에서도 큰 이슈다. 베트게 회장은 최근 동아일보가 실시한 럭셔리 브랜드 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77%가 ‘사회공헌을 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사겠다’고 답했다고 전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소비자가 성숙해질수록 사회적 책임을 따지는 게 당연합니다. 세계적으로도 럭셔리 소비자들은 자신이 부(富)를 쌓을 수 있게 해준 사회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다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이를 실천할 수 있게 돕는 ‘착한’ 브랜드를 찾고 있습니다.”
다빈치 후원했던 공작을 기리며…
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서울 호텔에서 모델들이 몽블랑의 한정판 만년필 ‘루도비코 스포르차 4810 에디션’(390만 원·왼쪽)과 ‘루도비코 스포르차 888 에디션’(1200만 원)을 선보이고 있다. 두 제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후원했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을 기려 제작됐으며 세계적으로 각각 4810개, 888개만 판매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몽블랑 만년필은 많은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1990년 독일 통일 조약 서명에 쓰인 것도 몽블랑 펜이었다. 베트게 회장은 몽블랑의 수많은 유명인 팬 중에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1963년 독일에 온 케네디 대통령이 당시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 총리와 방명록에 서명을 하는데 아데나워 총리가 펜을 안 가지고 온 거예요. 그래서 케네디 대통령이 독일 브랜드인 몽블랑 만년필을 독일 총리에게 빌려줬는데 그 모습이 어린 나이에 자랑스럽게 느껴져 이 브랜드에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든요.”
만년필로 시작했지만 최근 몽블랑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카테고리는 고급 시계다. 국내에서도 매년 20∼30%씩 매출이 늘고 있다. 1월엔 삼성그룹이 신임 임원 335명에게 몽블랑 시계를 선물해 화제가 됐다.
1997년 시작한 몽블랑의 시계 사업은 브랜드 확장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특히 몽블랑은 스톱워치와 타이머 등 다양한 기능이 접목된 크로노그래프 시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베트게 회장은 “크로노그래프라는 단어의 어원 자체가 그리스어로 ‘시간’과 ‘쓰다’는 뜻이 합쳐져 ‘시간의 기록’이라는 의미가 있어 만년필과 이미지가 잘 맞는다”고 말했다.
보석 및 가죽제품 등도 판매하는 몽블랑의 향후 도전 과제는 젊은 층과 여성 공략이다. 그가 “젊은 층을 타깃으로 디자인한 펜을 보여주겠다”며 양복 안주머니를 열자 펜 4개가 한눈에 들어왔다. 베트게 회장은 “그중 하나는 24년 전 당시 여자친구였던 현재 아내가 선물한 것으로 몽블랑 입사 때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 펜”이라며 “직원들에게도 ‘본인이 30년 뒤에도 이 제품을 가진 걸 뿌듯하게 여길지 고민해보고 제품을 개발하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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