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무더위와 코앞에 닥친 장마철을 앞두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곳이 있다. 실내 습도를 쾌적하게 유지해주는 제습기 생산 기업들이다. 값비싼 전기요금 탓에 에어컨을 풀가동하는 대신 제습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기업들의 생산라인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올해 제습기 시장 규모는 지난해의 2배 이상인 4000억 원가량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GFK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제습기 시장 점유율 1위는 중견기업 위닉스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도, LG전자도 아니다. 다음 주 장마가 찾아온다는 일기예보가 나온 뒤 위닉스의 주가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누구보다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는 윤희종 위닉스 회장(66)을 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본사에서 만났다. 윤 회장은 ‘잘 먹고, 잘살아보고 싶어’ 사업을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경북 예천군에서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하루 세끼 밥을 챙겨먹는 것도 힘들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영남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 학기 만에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5년 넘도록 중소 가전업체에 다녔다.
여기서 배운 기술을 밑천으로 1973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유신기업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2000년 사명(社名)을 위닉스로 바꿨다. 전기밥솥 안의 작은 솥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일본 ‘코끼리밥솥’이 최고의 가전제품으로 꼽혔지만 한두 명의 직원과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든 우리 솥도 품질이 탄탄했어요.”
창업 3년 뒤에는 냉장고, 에어컨 등에 들어가는 열 교환기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29세 청년이 운영하는 이름 없는 회사의 제품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하루에도 10여 개 회사를 찾아가 문을 두드렸지만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어렵게 찾은 거래처가 갑자기 어려워지는 바람에 부도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기를 몇 달. 유신기업사의 기술력을 알아본 삼성전자와 협력관계를 맺으면서 회사는 안정을 되찾았다. 대기업 협력업체로서 기반을 다져가고 매출도 꾸준히 상승하자 1997년 윤 회장은 열 교환기를 활용한 제습기를 내놓기로 했다. 해외출장을 가 일본 가정에서 장마철이나 무더운 여름날 제습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를 한국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국내에서 제습기는 찾아보기도 힘든 때였다. 윤 회장은 “최근에야 제습기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제습기가 뭔지도 모를 때였다”고 말했다. 수요를 창출하고 시장을 만들어야 했다. 그는 “양판점은 물론이고 주변 지인들까지 찾아다니며 ‘이런 게 있는데 한번 써보지 않겠느냐’며 돌아다니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고 회고했다.
그럭저럭 자리를 잡자 주변에서는 제습기보다 수요가 많은 다른 가전제품으로 사업을 확장해 보라는 권유가 잇따랐다. 외환위기가 본격화하기 전만 해도 가전사업은 호황이어서 한때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윤 회장은 스스로 세운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다. ‘한 우물만 파자’는 것이다.
제습기 외에 위닉스는 가습기, 공기청정기, 냉온수기 등의 제품을 내놓았다. 모두 열 교환기 기술을 적용한 것들이다. 윤 회장은 “내 경영철학은 넘치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며 “열 교환기 관련 기술 분야 및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위닉스는 지난해 1920억 원 매출에 37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윤 회장은 “올해 매출 목표는 최소 3000억 원이지만 지금 추세로는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며 활짝 웃었다.
취업난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한마디 해 달라고 부탁했다. “고향 친구가 서울대에 들어가 온 동네가 떠들썩했지요. 그런데 그 친구는 지금 정년퇴직하고 노후를 즐기고 있고, 나는 아직 현직에 있어요. ‘스펙’만 따지면 내가 뒤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끈질기게 도전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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