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발레계의 차세대 주역, 발레리나 원진호

  • 입력 2013년 6월 19일 16시 38분


- ‘제3회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용걸 교수와 ‘워크 2-1’선보여

국내 발레계의 차세대 주역으로 손꼽히는 발레리나 원진호(21). 그녀가 오는 24일 ‘제3회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용걸 교수와 ‘워크 2-1’에서 2인무를 선보일 예정이다.

원진호는 김주원, 강예나, 김지영의 뒤를 잇는 국내 발레계의 차세대 주역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원진호는 2012년 ‘제3회 남아프리카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현대무용과 여자 발레 부문 2관왕을 석권했으며, 그전인 2009년에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2인무 부문’과 ‘서울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그녀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그런 그녀는 2011년 8월, 국내 최연소로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정단원에 선발되어 세계 발레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이민국은 “대학 졸업장이 없고 국제 콩쿠르 경력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그녀의 비자발급을 세 차례나 거부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국내에서 꾸준히 기량을 높여가고 있다. 발레리나 원진호를 만나 그녀의 꿈과 포부를 들었다.

- 발레영재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니는데?

발레 영재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인 거 같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발레를 시작했다. TV 속에서 국립발레단이 <백조의 호수>를 추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는 완전히 매료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래서 운 좋게 선화예술학교에 입학했지만, 한동안 매번 꼴찌만 했다.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워서 어머니도 많이 우셨다. 그래서 ‘남들보다 2배 열심히 하는 걸로는 부족하겠다. 무조건 4배는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으로 연습했다. 부상으로 발레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고 들었다.

2008년 <라바야데르>라는 공연에서 스트레스성 골절을 입었다. 주역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총 50분의 공연 중 20분 만에 정강이가 부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너무나 오래 준비하고 기대했던 공연이었고, 함께 땀 흘린 무용수들과 나를 보기 위해 와주신 관객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최면을 걸며 무대를 끝까지 마쳤다. 하지만 그 공연 이후 1년간의 재활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그래도 그런 과정이 있어서 춤을 춘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 나이를 뛰어넘는 원숙한 표현력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데?


과찬인 듯하다(웃음). 혹시 내게 그런 장점이 있다면, 평소에 머릿속으로 소설을 쓰는 습관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사실상 작품에 들어가는 동작이라는 것은 한정적이다. 중요한 것은 음악과 극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선보인 현대무용은 고통받는 유태인의 애환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었는데, 이때도 머릿속으로 소설을 써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철저한 자료조사가 필요하다. 그렇게 차츰 인물에 몰입해가면서 그 인물이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까를 고민해보고, 그 안에 담긴 숨은 이야기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자꾸 그렇게 인물에게 다가가는 거다. 마치 사랑하는 이에게 말을 걸듯이.

인터뷰 진행: 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

<본 자료는 해당기관에서 제공한 보도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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