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부터 싱가포르와 한국 정부 사이에서 조세포탈 혐의자의 금융정보 교환이 한결 수월해진다. 이에 따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국 씨가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있는 회사)를 이용해 만든 계좌 등 싱가포르에 숨겨진 한국인 계좌에 대한 수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은 또 7월 1일까지인 올해 해외금융계좌 신고기간이 끝나면 해외에 자산을 은닉한 혐의자들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조세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에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명단 공개 등으로 역외탈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것을 ‘1라운드’로 본다면 하반기부터는 국세청과 금융당국이 역외탈세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밝혀내는 ‘2라운드’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부와의 조세협약 개정안이 28일부터 발효된다. 지금까지는 자국 국내법에 저촉될 경우 상대국이 조세포탈 혐의자의 금융정보를 요청해도 정보교환을 거부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요청이 있으면 반드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홍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의 국제금융 중심지 싱가포르는 페이퍼컴퍼니나 해외 계좌를 만들기 위해 한국의 자산가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재국 씨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만든 계좌에는 전 전 대통령의 재산 환수와 관련해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개정안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관례를 고려할 때 개정안 발효 이전의 금융 정보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벽에 부닥쳤던 역외탈세 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도 법적 근거가 마련된 만큼 싱가포르에 계좌 정보를 요청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특정인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탈세 여부를 밝히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다만 정보를 요청할 때마다 조세포탈 혐의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하는 등 절차가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다음 달 1일에 올해분 해외금융계좌 자진 신고가 끝나면 신고 내용을 토대로 본격적인 역외탈세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 신고받은 계좌와 그동안 국세청이 자체 확보한 자료를 정밀 비교분석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국세청 측은 신고기간 중에 싱가포르와의 조세협약이 발효된다는 사실이 신고율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7월 중순 스위스와의 조세협약 발효를 앞두고 마감된 지난해 해외 금융계좌 신고에서는 스위스 계좌 신고액이 전년 대비 약 14배로 급증한 바 있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대표는 “조세정보 제공에 소극적이었던 홍콩도 최근 OECD 등의 압력으로 다른 나라와의 정보 공유에 나서고 있다”면서 “이번 기회에 한국 정부도 다소 지지부진했던 조세피난처와의 조세정보 교환협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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