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저녁 세종시에서 만난 기획재정부 국고국 당국자가 지난 주말에 잠을 설친 이유는 이날 실시된 국고채 20년물 입찰 때문이었습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선언 여파로 최근 채권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습니다. 환율과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면서 채권금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죠. 가능성은 작지만 지난해 국가 신용등급이 잇달아 상향 조정되면서 시장에서 인기를 모았던 한국의 국고채 역시 자칫 발행에 실패해 ‘망신’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날 정부가 약 7000억 원 규모로 실시한 국고채 20년물 입찰의 응찰률은 211.6%로 1조4810억 원 응찰에 그쳤습니다. 2009년 12월 193.2% 이후 3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지난달 국고채 20년물 응찰률이 475.8%까지 치솟는 등 올해 들어 450% 이상을 유지해 왔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입니다. 국고채 응찰률은 높아질수록 더 유리한 금리로 국고채를 발행할 수 있어 높을수록 한국 정부에 유리합니다.
오전에는 우려보다 입찰이 잘 진행됐지만 오후에 환율이 급등(원화가치는 하락)하면서 채권금리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갔고 결국 200%를 조금 넘긴 수준에서 응찰이 끝났습니다.
기재부 당국자는 “당초 200%를 넘기기도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 정도면 선방한 것”이라며 “금융시장이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서도 응찰률이 200%를 넘었다는 것은 결국 한국 경제의 체력이 그만큼 튼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는 최근 장기 국고채 물량을 축소하겠다고 밝히는 등 국고채 발행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의 사례에서 보듯 국채금리는 국가 경제의 ‘체력’을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기침체로 세수 부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예산을 조달하려면 국고채 발행이 원활해야 합니다.
국고국 당국자는 “국고채가 원활히 발행돼야 그 나라의 경제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국고채가 ‘버냉키 후폭풍’을 이겨내고 더욱 선방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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