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국기업의 미래]“中서 번 돈은 재투자”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으로 SK, OK!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8일 03시 00분


SK의 중국 사업은 크게 에너지와 정보통신기술(ICT)로 구분된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ICT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이 각각 사업을 이끌고 있다. 사진은 중국 상하이에 건설된 중국 국영기업 시노펙과 SK종합화학의 합작 공장. SK 제공
SK의 중국 사업은 크게 에너지와 정보통신기술(ICT)로 구분된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ICT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이 각각 사업을 이끌고 있다. 사진은 중국 상하이에 건설된 중국 국영기업 시
노펙과 SK종합화학의 합작 공장. SK 제공
“한국 기업에 중국은 외국이 아닙니다. SK그룹은 중국에서 번 돈을 다시 중국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이른바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이었다. 고 최종현 SK 회장은 생전에 스스로 한국과 중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며 민간 외교사절의 역할을 자처해왔다. 그가 생전에 강조했던 중국 사업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이후 차이나 인사이더라는 SK그룹의 독특한 전략으로 이어지게 된다. 차이나 인사이더는 SK그룹이 중국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이 아니라, 중국 기업처럼 중국에서 사업을 해 중국에 재투자하는 내부자(insider)가 되겠다는 뜻이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뿌리 깊은 중국 진출사

한중 수교는 1992년에야 이뤄졌지만 그 준비 단계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1991년 1월에는 한국과 중국이 서로 베이징(北京)과 서울에 무역대표부를 설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최종현 회장의 노력이 꾸준하게 이어졌다. 1991년 SK가 한국 기업 가운데 최초로 베이징 지사 설립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노력 덕분이었다. SK의 중국 진출은 1990년 푸젠(福建) 성에서 이 회사가 중국의 중견기업 인데센(永德信)그룹과 비디오테이프 합작 공장을 세운 게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늘 평탄하고 쉬운 길만은 아니었다. 좌절도 적지 않았다. SK는 1990년대 초반 중국 선전(深(수,천))에 10억 달러 규모의 정유단지 건설을 추진했다. 이곳에 정유공장을 짓고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로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SK는 당시 선전시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최종적으로 중앙정부의 비준만 남겨둔 상태에 이르렀다. 당시 홍콩의 경공업제품 생산기지 역할에 그쳤던 선전시로서도 SK가 제시한 중공업 중심의 발전 계획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는 상태였다.

하지만 문제는 중앙정부였다. 중국 중앙정부의 대답이 계속 지연되면서 답답해하던 SK는 중앙정부가 외국기업이 중국에서 에너지 관련 산업을 시작하는 것을 비준하는 데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SK는 1996년 말까지 이 사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쓴 경비만 200만 달러가 넘었다. 하지만 이렇게 공들인 대형 프로젝트는 결국 송두리째 무산됐다.

이후 SK의 중국 사업은 2∼3년 동안 큰 진전이 없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1997년 말에는 아시아 경제위기까지 터지며 어려움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SK는 줄곧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을 고수했다. 선대 최종현 회장이 입버릇처럼 “중국 사업은 30년은 해야 결실을 거둘 수 있다.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SK를 중국 기업처럼

SK의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은 크게 4가지의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 △상호 이해 △상호 신뢰 △상호 이익 △장기 비전이다. 이는 SK가 중국에서 외국 기업처럼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중국인의 이익을 위해 중국 기업처럼 활동하겠다는 선언이다. 물론 회사의 기반은 한국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과 중국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회사의 전략으로 삼는다.

이렇게 되면 중국 시장은 SK로서는 더이상 ‘해외 시장’이 아니다. 한국과 똑같은 ‘제2의 내수시장’이 되는 셈이다. SK는 중국 진출을 “시장의 확대”라고 설명한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게 아니라 한국 시장을 중국까지 확장한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은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파트너링’ 방식을 꼽는다. SK와 글로벌 메이저 기업이 제휴를 맺고 여기에 중국 기업도 파트너로 함께 협력해 중국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방식이다. 중국 충칭(重慶) 시에서 추진하는 석유화학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업에는 SK와 함께 중국 최대의 국영 석유회사인 시노펙, 영국 최대 석유화학 기업 BP가 참여했다. 중국으로서는 지리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한국 기업과 밀접하게 일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참여도 함께 이끌 수 있고, SK는 세계와 중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신뢰를 쌓고 중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현지 인력 채용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10년 출범한 SK그룹의 중국 교두보인 SK차이나는 새 최고경영자(CEO)로 신사업개발 담당을 맡았던 쑨쯔창(孫子强) 전무를 법인장으로 승진시켰다. 첫 현지인 CEO 임명이었다.

중국을 아는 기업

SK는 중국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덕에 SK는 그동안 중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의 목표인 양국의 진정한 신뢰는 상호 간의 깊은 이해에서 나오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은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를 위해 SK는 SK한국고등교육재단 등을 통해 다양한 중국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중 수교 20년을 맞아 ‘한국에서 살아본 중국학자가 보는 한국’ 등 대형 학술회의도 개최했다.

SK한국고등교육재단은 고 최종현 SK 선대 회장이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해 사재(私財)를 출연해 세운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장학사업 및 우수 국내인재 양성 등이 주목적이지만 그 대상이 국내만이 아니라 중국의 학자나 학생들까지 포함한다. SK한국고등교육재단은 매년 중국 베이징에서 베이징대와 ‘베이징 포럼’을 열고, 상하이(上海) 푸단대와 ‘상하이 포럼’도 개최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매년 40여 명에 이르는 중국 교수를 한국에 초청해 한국 관련 학술연구를 지원한다.

최태원 SK㈜ 회장도 매년 중국 하이난(海南) 섬에서 열리는 보아오(博鰲) 포럼에 참석하면서 중국 지도층 및 오피니언 리더들과 정기적으로 친분을 쌓는다. 보아오 포럼은 ‘아시아판 다보스 포럼’으로 일컬어지는 포럼이다.

올해 행사에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개회사를 하고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일본 총리,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 등이 각국을 대표해 참석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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