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커지는 행복주택… 시범지구 7곳중 6곳 공식반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0일 03시 00분


■ 시동 건지 50여일… 반쪽사업 우려

서울 양천구 목동 유수지에 기둥을 박아 복개한 터는 현재 주차장, 테니스장, 쓰레기집하장, 빗물펌프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유수지는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선정된 뒤 지역주민들이 반발하면서 사회갈등의 중심지가 됐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 양천구 목동 유수지에 기둥을 박아 복개한 터는 현재 주차장, 테니스장, 쓰레기집하장, 빗물펌프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유수지는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선정된 뒤 지역주민들이 반발하면서 사회갈등의 중심지가 됐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5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500m 정도 떨어진 목동 유수지(遊水池). 유수지에 기둥을 박아 복개한 10만5000m² 터 위에는 차량 1350대를 주차하는 대규모 공영주차장과 18개 코트의 테니스장, 재활용품 선별장, 음식물쓰레기 집하장, 빗물펌프장이 들어서 있었다. 유수지 아래 고인 물은 쓰레기로 뒤덮인 채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이 유수지는 정부가 도심 내 서민임대주택인 행복주택 10만5000채를 짓겠다고 발표한 뒤 지자체와 주민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온 곳. 건너편 주상복합 하이페리온과 주변 곳곳에는 ‘양천구민 의사 짓밟은 행복주택 지정 결사반대’라거나 ‘어쩌란 말인가? 교통대란 주차전쟁 초과밀학급 인구 초고밀도’라고 쓰인 크고 작은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양천구 주민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에 이어 이날도 2만 명의 반대서명을 받아 국토교통부와 청와대에 전달했다. 신정호 주민비대위 위원장은 “국토부가 지난달 26일 열기로 한 주민간담회를 하루 전날 미루자고 하더니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다”며 “사업지를 일방적으로 정하더니 대화 창구조차 열 의지가 없다”라고 분개했다.

○ 첩첩산중, 7곳 중 6곳 반대

박근혜정부의 핵심 주택정책인 ‘행복주택 프로젝트’가 시범지구 7곳을 발표하며 본격 시동을 건 지 50여 일. 그동안 사업 진척도, 갈등 조율도 이뤄지지 않은 채 반대하는 곳은 계속 늘고 있다.

이달 1일 송파구에 이어 5일 구로구가 국토부에 행복주택 건립 반대 의견서를 공식 제출했다. 시범지구 7곳 가운데 반대 의사를 밝힌 곳은 6곳. 구로구 관계자는 “주민설명회에서 반대 의견이 많았다. 인근 천왕지구 등에 임대주택 사업이 많아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양천구 목동과 송파구 잠실·송파지구는 중산층이 많은 데다 구청 소유의 유수지가 사업지로 선정돼 반발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원내선 송파구의원은 “100년에 한 번 올 수 있는 홍수를 막는 게 유수지다. 그린벨트처럼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정부가 특별법을 이용해 밀어붙이고 있다”고 반발했다. 양천구 관계자는 “유수지는 지반이 약해 복개한 것을 모두 걷어낸 뒤 다시 기둥을 박아 공사해야 해서 비용이 엄청 들 것”이라며 “임대주택 목적에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 “정부 설득 의지 있나”

일부 지역은 입주자대표회의 등이 반대 서명에 동참하지 않는 주민에게 벌금을 물리는 등 ‘민(民)-민(民) 갈등’까지 불거지는 모습이다. 송파구 주민 신모 씨(67)는 “세입자는 임차료가 떨어질 것을 기대해 찬성하고, 집주인은 집값이 떨어질까 봐 반대한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지난달 19일까지였던 주민공람 기간만 이달 5일까지 연장했을 뿐 지자체와 협의하거나 주민들을 만나는 자리를 갖지 않고 있다. 갈등을 회피하기만 할 뿐 설득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원구 관계자는 “착공이 내년 2월로 연기됐다는 얘기만 들었지 국토부와 아무런 협의가 없었다”며 “시간 끌기에 나선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반발이 계속되자 앞으로 지자체가 요청한 곳을 우선적으로 후보지로 정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놨다. 이에 대해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민이 거부하는데 지자체는 도심에서 떨어진 곳을 제안할 수밖에 없다. 복지지출이 늘 것이 뻔해 자발적으로 지원할 지자체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준일·정임수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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