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세계 최대의 아동도서 전시회인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현장. 해외 전시회에 처음 참가한 한국의 유아서적 전문 출판사 ‘애플비’ 부스는 코믹한 오리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이 소리는 책(‘용감한 리리’)에 붙어 있는 아기오리 모형의 입 안에 애플비 직원들이 손가락을 넣어 내는 것이었다. 많은 바이어들이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실제 계약은 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바이어들하고만 맺어졌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을 목표로 했던 애플비 임직원들에겐 다소 부족한 성과였다.
약 5개월 뒤, 폴란드 바이어가 갑자기 연락을 해 왔다. ‘만들기왕 자동차’란 책을 폴란드어로 번역해 완제품(완성본)으로 수출해 달라는 의뢰였다. 유럽으로의 첫 수출 소식에 애플비 기획편집부 직원들은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애플비는 지난해 10월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과 올해 3월 다시 참가한 볼로냐 도서전에서 영국과 스웨덴 스페인 폴란드 러시아 중국 대만 일본 등 8개 국가 출판사들과 수출 계약을 맺었다. 지금까지 수출 계약을 한 책은 약 20만 권. 이 가운데 출판 선진국이라 ‘넘을 수 없는 벽’으로만 여겼던 유럽 지역으로만 총 5만5000권가량(소비자가 기준 약 14억 원 규모)의 책이 수출됐거나 수출 예정이다.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의 애플비 본사에서 만난 김선영 편집장(40)은 “유럽 시장에 완성본을 수출하게 된 것은 콘텐츠뿐 아니라 책의 품질과 안전성까지 모두가 선진국의 기준을 통과했다는 의미”라고 자랑했다.
애플비는 2004년 국내 최초의 헝겊 책 ‘무당벌레는 내 친구’를 선보여 지난달 말까지 누적 판매량 70만 부를 기록하는 등 국내의 영유아용 토이북 시장을 선도해 왔다. 2006년 홈쇼핑에 진출한 이후에는 ‘국민 아기책 출판사’란 타이틀을 얻었다. GS샵의 제안으로 단행본을 모아 70∼80권짜리 전집으로 구성한 ‘애플비 입체 토이북 세트’는 2006년 1월 첫 방송 이후 총 86차례나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말까지의 누적 판매량은 약 50만 세트(총 3700만 부)에 이른다.
애플비 토이북은 기존 그림책에 오락적인 요소와 멀티미디어 기능을 더한 것이 강점이다. 배변 습관을 길러주는 토이북 ‘왕자님·공주님의 화장실’에는 변기 물 내리는 소리, 손 닦는 소리 등 5개의 소리를 내 주는 버튼이 달려 있다. 사운드 버튼이 달랑 한두 개밖에 없는 영미권 도서에 비해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김 편집장은 “유럽에선 경제 위기 때문에 출판계의 아이템 개발도 정체된 상태”라며 “그렇다 보니 출판사들이 스마트폰의 다양한 유아용 앱들과 경쟁할 만한 콘텐츠를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한국 엄마들의 눈높이와 취향이 책 제작에 곧바로 반영되는 점도 글로벌 시장에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 편집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까다로운 한국 엄마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접수하다 보니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아이 엄마라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애플비 기획편집부는 직원 7명 전원이 여성이며 그중 어린 자녀를 둔 엄마가 4명이다. 세 살배기 딸을 둔 박지현 대리(35)는 최근 아기를 목욕시키다 아이디어를 얻어 물속에서도 똑바로 서 있는 ‘오뚝이 목욕책’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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