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옛 하이닉스반도체) 등 굴지의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2000년대 초 세계시장 점유율을 크게 확대하며 사세를 키워나갔다. 이들 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원익큐엔씨(옛 원익쿼츠)도 혜택을 본 업체 중 한 곳이다. 경북 구미시에 본사가 있는 이 회사는 반도체 및 액정표시장치(LCD) 생산에 필요한 쿼츠웨어를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에 공급하며 매출을 늘려갔다. 쿼츠웨어는 반도체 웨이퍼 가공 과정에서 불순물이 침투하지 않게 하는 부품이다.
2003년 12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고 2007년에는 ‘1000만 불 수출의 탑’을 받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 램 리서치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들도 원익큐엔씨의 기술력을 믿고 제품을 사갈 정도였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반도체 업황이 얼어붙고 글로벌 고객 기업이 줄줄이 생산량을 줄이면서 원익큐엔씨의 매출은 2007년 543억 원에서 2008년 460억 원으로 떨어졌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110억 원에서 79억 원으로 줄었다. 급한 김에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다 보니 2008년 37%이던 부채비율은 1년 새 66%로 늘었다. 일부 금융회사는 상환일이 다가오자 연장해주지 않고 “빨리 갚으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1년 이상 버텼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은 동요했고, 일부는 직장을 옮겼다. 2010년 어느 날 이용한 원익큐엔씨 회장은 임원회의에서 “공장을 추가로 지어 늘어날 수요에 대비하자”고 말했다. 대기업마저 진행 중인 투자를 멈추던 때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언제까지 중소기업에 머무를 것이냐. 경기가 회복되면 정보기술(IT) 분야 수요가 먼저 늘어날 것이고 반도체 업황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며 임직원들을 설득했다.
문제는 자금 조달이었다. 원익큐엔씨의 실적을 본 금융회사들은 “경기도 안 좋은데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을 믿을 수 없다”며 장기 설비자금 대출을 꺼렸다. 번번이 퇴짜를 맞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한국정책금융공사다. 정책금융공사는 원익큐엔씨의 현황을 검토한 뒤 자체 중소기업 육성 프로그램인 ‘프론티어 챔프’에 이 회사를 넣기로 했다. 경기 침체로 잠시 주춤하는 것일 뿐 기술력과 사업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익큐엔씨는 그해 8월 장기 시설자금 50억 원, 이듬해 2월 운전자금 40억 원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그리고 2011년. 반도체 업황이 살아나자 주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투자를 주저했던 다른 업체와 달리 미리 생산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이 회장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원익큐엔씨는 국내시장 점유율을 45%까지 끌어올리며 1위 자리를 굳혔다. 해외시장 점유율도 약 20%까지 늘렸다.
2009년 407억 원까지 떨어졌던 원익큐엔씨의 매출은 지난해 805억 원으로 늘어났다. 고용도 늘려 지난해에는 종업원이 300명을 넘어섰다. 중소기업을 졸업하고 중견기업이 됐다. 박근원 사장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누려왔던 갖가지 혜택이 사라진다고 하지만 우리는 큰 비전을 갖고 더 큰 성장을 위해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정책금융공사 관계자는 “각종 지원이 끊어질 것을 두려워해 중소기업에 머무르려는 ‘피터팬 신드롬’에 빠진 많은 중소기업과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라며 “중소·중견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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