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이 ‘금융감독 시스템 혁신방안’을 발표한 17일, 한 증권사의 임원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을 어떻게 벌지는 우리가 연구할 일이죠. 금감원이 제시하는 경영 개선방안이 얼마나 쓸모 있을지 의문이네요.”
금감원은 이날 “금융회사의 부담이 너무 크고 검사가 뻣뻣하게 이뤄져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여러 혁신방안을 내놨습니다. 그중 야심작은 이른바 ‘컨설팅 검사’. 경영에 문제가 있는 금융사를 제재 위주로 지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경영진단을 통해 개선방안을 도출해 내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금융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불법 사안을 잡아내기에도 바쁠 감독 당국이 경영 컨설팅을 해 준다는 게 생뚱맞다는 것입니다.
이번 혁신방안에는 금융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경미한 위반사항이나 소비자 피해가 크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금융사가 알아서 개선토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감독 당국은 ‘중대한 취약 부분’에 검사 역량을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또 검사에 필요한 자료는 원칙적으로 검사 착수 전에 미리 받고,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현장에서는 자료를 제출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금융사 검사 현장에서는 이른바 ‘저인망식 검사’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혁신방안을 놓고 일각에서는 ‘감독의 칼끝이 무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내비칩니다.
한편에서는 경미한 법규 위반을 별것 아닌 걸로 볼지 모르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릅니다. 금감원의 한 검사담당 직원은 “대부분의 대형 금융사고는 작은 손실을 메우기 위한 작은 범죄에서 시작돼 점차 그 규모가 커진다”고 지적합니다. ‘과도한 자료제출 억제’ 지침 역시 현장에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같은 곳들은 엄연히 제출해야 하는 자료도 없다고 둘러대거나, 심지어 제출 요구를 받은 자료를 파기하는 사례도 종종 드러납니다.
흔히 금감원을 금융회사의 ‘슈퍼 갑(甲)’이라고 합니다. 갑의 나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금융감독 자체를 허술하게 할 여지를 만들면서 금융사를 ‘배려’해서는 곤란합니다. 경기침체로 수익이 줄어 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는 지금이야말로 원칙을 지키는 금융감독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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