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칼럼]“1000만원 쓸 고객을 100만원 쓰게 하는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4일 03시 00분


박용 경제부기자
박용 경제부기자
“한국은 1000만 원 이상 쓸 손님을 100만 원만 쓰게 하는 재주가 있다.”(중국인 의료관광객 왕푸 씨)

“중국 의료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본다면 중국인 환자를 선점할 시간이 5년밖에 남지 않았다.”(한동우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글로벌기획팀장)

“중국으로 건너간 한국 병원 중 성공 사례는 단언컨대 없다.”(이왕준 한국의료수출협회장)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확인한 한국 의료관광 현장에서는 묵직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해외 환자 유치 실적 상위 10개 병원의 올해 상반기 중국인 환자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 현지에서는 ‘의료 한류’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의료관광 대국인 태국 싱가포르는 뛰고 후발 주자인 대만 일본은 맹추격을 시작했다.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

한국은 조선 자동차 반도체와 같은 제조업 주력 업종에서 일자리가 말라 가고 있다. 공장의 해외 이전과 자동화로 매출이 늘어도 국내 일자리는 거의 늘지 않는다. ‘고용 없는 성장’이다. 1970, 8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처럼 교육 의료 법률 금융과 같은 지식 집약적인 서비스업을 육성하고 달러를 벌어들이는 수출 산업으로 키우는 과감한 산업 정책이 ‘일자리 불임(不姙)’ 경제의 돌파구다.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과거 전자공학에 우수 인재가 몰리며 반도체 산업이 성장했다”면서 “요즘 최고 인재가 몰리는 의료 분야가 한국을 먹여 살릴 차례”라고 말했다.

운 좋게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한국의 곁에 있다. 중국 중산층은 2020년 4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비행기로 2시간 이내에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만 40개다. 의료관광과 같은 서비스 수출이 일자리를 만드는 ‘달러 박스’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인 환자 50만 명을 유치하면 병원, 관광, 제약, 의료산업 등에서 최대 6만여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굴러온 일자리도 걷어차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의료 산업에 자본을 끌어들일 길을 터 주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허가 문제는 20여 년째 ‘논쟁 중’이다. 외국인 유치 한도, 부대 수익사업 제한, 외국인 의사 채용 제한과 같은 해묵은 병원 규제도 여전하다. 의료의 공공성 훼손 우려를 불식시킬 창의적 해법과 갈등을 정면 돌파할 정치적 리더십은 실종 상태다. 이대로라면 한국 부자가 대거 중국으로 의료관광을 떠날 날도 머지않았다.

시간제 일자리와 같은 ‘일자리 나누기’나 나랏돈을 풀어 만드는 공공 일자리로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없다. 의료관광과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일자리 ‘덧셈’과 ‘곱셈’이 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하는 고용률 70% 시대를 여는 열쇠다. 맨땅에서 조선과 자동차 산업을 일으킨 정주영 전 현대그룹 창업주는 안 되는 이유만 늘어놓는 참모들에게 “임자, 해봤어”라고 다그쳤다. 박 대통령이 핑계를 대는 경제팀에 해야 할 말이다.

박용 경제부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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