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애플의 ‘아이폰3G’를 필두로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국내에서도 정보기술(IT)과 모바일 네트워크를 활용한 창업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창조경제’ 바람을 타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 사이에선 “최근 1, 2년 새 투자해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은 확연히 늘었지만 ‘될성부른 스타트업’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구별하는 제1 요건은 무엇일까.
답은 ‘사람(창업자)’이었다. 장병규 본엔젤스 사장,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사장,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사장, 노정석 파이브락스 최고전략책임자(CSO),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스타트업 투자자 5명의 대답은 같았다.
○ 결국은 ‘사람’
투자자들이 꼽은 창업자의 중요한 자질은 학습능력 및 비전, 열정, 끈질김, 리더십 등이었다. 게임업체 네오위즈를 창업했던 장 사장은 “스타트업 중 사업계획서대로 진행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보면 된다. 10곳 중 7, 8곳은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없어진다”며 “이렇다 보니 창업자들의 학습능력과 태도, 자질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본엔젤스가 지난해 말 투자한 유저인터페이스(UI) 소프트웨어 업체 위트스튜디오가 대표적이다. 장 사장과 처음 만났던 지난해 가을 위트스튜디오의 창업자들은 포토샵을 대체할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고 했다. 포토샵의 기능이 너무 많아 복잡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장 사장과 3개월 동안 만남을 이어가면서 이들은 “디자이너들이 이미 익숙해진 포토샵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포토샵 작업을 한 뒤 이어지는 각종 부수 작업들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으로 방향을 틀었다. 장 사장은 “창업자들에게 고집과 의지, 믿음과 과신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이것이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며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할 땐 빨리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모바일게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접목해 큰 성공을 거둔 ‘애니팡’ 개발사 선데이토즈도 좋은 사례다. 2010년 소프트뱅크벤처스가 투자할 당시 선데이토즈는 싸이월드를 통해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아쿠아스토리’ 게임을 출시했다. 문 사장은 “선데이토즈 창업자들은 당시부터 게임을 모바일 SNS에 접목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며 “게임 시장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는 팀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이라고 이야기를 꺼내는 창업자들에게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고 했다.
케이큐브벤처스가 지난해 투자한 키즈노트는 임 사장이 단 두 번의 만남으로 투자를 결정한 사례다. 모바일 알림장인 키즈노트는 안랩 입사 동기 최장욱 씨와 김준용 씨가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최 씨는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손으로 메모를 쓴 뒤 메모를 사진으로 찍어 인쇄하고 알림장에 붙여서 부모님에게 들려 보내는 것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임 사장은 “최 씨는 안랩의 뛰어난 엔지니어였고 김 씨는 신입사원 때 우수영업사원상을 받은 ‘영업왕’이었다”며 “검증된 인재와 구체적인 솔루션을 보고 바로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현재 키즈노트는 국내 4만 개 어린이집 중 5000개를 고객사로 유치했다.
○ “시장과 고객은 나보다 똑똑하다는 현실 직시를”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에 대한 쓴소리도 했다. 고 회장은 “최근 투자를 해달라고 오는 스타트업 창업자의 절반 이상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애플리케이션을 베낀 카피캣(copycat·모방꾼)”이라며 “특히 소셜커머스와 ‘리워드 앱(광고를 보거나 퀴즈를 풀면 상품을 주는 앱)’ 분야에서 카피캣이 넘쳐난다”고 지적했다.
노 CSO는 실패하는 스타트업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문서상으로만 완벽한 점을 꼽았다. 실패가 두려워 머릿속으로 구상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장과 고객은 언제나 나보다 똑똑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부딪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 사장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뭉친 창업자들에게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창업한 뒤 1년간 매출이 한 푼도 안 나는 상황이 닥칠 수 있는데 돈만 보고 모인 사람들은 분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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