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지하경제 양성화 ‘1호 대책’ 백지화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6일 03시 00분


가짜석유 근절 통한 세원 확보 방안
“범죄기업 취급” 업계 반발 이어지자… 규개위 “기존 수기보고도 허용” 후퇴
산업부 “단속 실효성 없다” 재검토

새 정부 출범 직후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추진되던 ‘가짜 석유 근절’이 정부 내 이견으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주유소의 석유 거래를 감시할 수 있는 ‘석유수급 보고 전산화 시스템’을 도입해 가짜 석유 유통으로 사라지는 연간 7000여억 원의 탈루세금을 걷어 들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계획에 규제개혁위원회가 수정 권고를 하고 나서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당초 내년 9월부터 도입될 예정이었던 석유수급 보고 전산화 추진 일정이 최근 백지화됐다. 국무총리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가 주유소 업계의 반발을 이유로 수정 권고안을 내놓으면서 가짜 석유 적발 실효성이 낮아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석유수급 보고 전산화는 주유소의 석유 거래 상황을 전산으로 자동 보고하도록 하는 것으로 올해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도입하기로 한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주유소가 매일 정유사와 유통업체로부터 공급받는 휘발유, 경유의 양과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양을 비교하면 가짜 석유를 섞어 판매하는 주유소를 실시간으로 적발할 수 있다.

지금은 주유소들이 석유제품 거래 규모를 매달 한 번씩 주유소 협회를 거쳐 석유공사에 수기로 보고하면 석유공사가 가짜 석유 유통을 감시하는 석유관리원에 이를 통보하고 있다. 하지만 주유소들이 거래 규모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도 이를 검증할 수가 없어 가짜 석유를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석유수급 보고 전산화 제도는 지난달 말 규제개혁위원회에 의해 급제동이 걸렸다. 주유소 단체들이 “주유소를 범죄기업으로 취급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반발하자 교수 등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규제개혁위원회가 수정 권고안을 내놓은 것. 규제개혁위원회는 권고안에서 주유소들이 수기보고와 전산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뒤 가짜 석유 적발 실적 등을 보고 전면 도입에 대해 다시 평가하라고 권고했다. 또 전산화 보고 주기도 매일 보고에서 주간 보고로 바꿨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산업부와 석유관리원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안대로 주유소가 수기보고와 전산화를 선택할 수 있게 하면 가짜석유를 유통하는 주유소들이 모두 수기보고를 택해 당초 목적인 가짜 석유 근절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또 매일 보고가 주간보고로 바뀌면서 가짜 석유 유통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도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주간보고는 수용할 수 있지만 주유소에 보고 방식을 선택하도록 하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는 가짜 석유 단속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하지만 제도를 도입하려면 이 권고안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제도 도입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7000억 원에 이르는 가짜 석유 근절에 따른 세원 확보 대책도 수포로 돌아갈 소지가 커졌다.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가짜 석유 유통량은 212만4920kL에 이르며 이에 따른 탈루세액은 1조91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돼 국내 최대의 지하경제 규모로 꼽힌다. 이 중 지난해 석유관리원의 가짜 석유 단속원이 적발해 거둬들인 세금이 3769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에만 7141억 원의 세금이 지하로 빠져나간 셈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지하경제 양성화#가짜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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