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경력 단절 여성’이었습니다. 결혼 후 20년 넘게 집에만 있다가 창업을 하려니 눈앞이 깜깜했지요. 그래도 부딪쳐야 합니다. 막히면 주변에 도움을 청하세요.”
이민재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69)은 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SK텔레콤, 포스코, CJ 등 대기업들이 출산과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던 여성들의 채용을 늘리고 있다. 이 회장은 경력 단절 여성에서 사업가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977년 출범한 여성경제인협회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협회장을 맡던 1999년 법정단체로 등록했다. 현재 여성기업 약 1800곳을 회원사로 두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태평방직에서 경리로 일하던 이 회장은 결혼과 동시에 사표를 냈다. 그러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명예퇴직을 하자 당시 대학 1학년, 고등학교 2학년이던 두 아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44세에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수입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공급자에게 발주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바이어와 협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물론 영어도 할 줄 몰랐어요.”
그는 1988년 광림무역상사(현 엠슨)를 세우고 주변을 수소문해 독일에 살던 지인의 도움으로 주물을 코팅할 때 쓰는 왁스를 수입해 팔기 시작했다. 지인은 영어 발주서를 대신 써줬고 협상 기술도 가르쳐줬다. 4년 뒤 품목을 늘리고 사업이 안정궤도에 접어들자 이 회장은 독일에 살던 지인을 회사로 모셔 왔다.
그는 “많은 경력 단절 여성들이 혼자라는 생각에 두려워하지만 부딪치고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면 길이 보인다”고 조언했다.
대기업들이 경력 단절 여성의 채용을 늘리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저출산 기조로 젊은 노동력이 고갈되면 숨은 여성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향후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파트타임 등을 통해 유연한 근무 형태를 보장하되 능력 있는 인재를 적극 발굴해 주요직에 앉히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대기업들에 주문했다.
그는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어머니의 최우선 역할은 가정을 훌륭하게 꾸리는 것”이라면서도 “육아의 짐이 줄어들면 적극적으로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월 ‘여성 기업 공공구매제’가 법제화되는 등 여성 기업인의 사업 여건은 점차 나아지는 추세다. 내년 1월부터 공공기관은 물품 및 용역을 구매할 때 총액의 5% 이상, 공사에서는 3% 이상에 해당하는 일감을 반드시 여성 기업에 할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여성 기업인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며 생계형 창업자금 및 여성 전용 창업보육센터의 확대를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꼽았다. 그는 “생계형 창업에 뛰어드는 여성은 남편이 실직했거나 남편과 사별한 경우가 많아 더욱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며 “여성들이 육아와 창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수유실과 창업보육센터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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