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박현일 씨(37·여)는 지난해 여름 아프리카에 사는 한국인에게서 e메일을 받았다. 아이폰 수리업체를 운영하는데 로고를 그려 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박 씨는 애플의 상징인 사과 모양과 아이폰 설정 앱(응용프로그램)의 톱니바퀴 모양을 활용해 도안을 만들고 기업의 로고를 그려 보냈다. 곧 10만 원이 입금됐다. 박 씨가 최근 1년간 해외에서 받은 주문은 150여 건에 이른다.
2007년 결혼 후 직장을 그만뒀던 박 씨는 최근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2011년 말 재능거래 웹사이트 ‘크몽’에서 로고, 웹툰 제작 등 본인의 재능을 팔면서부터다. 그는 산업디자인 전공을 살려 기업의 로고와 홍보물을 그려주는 프리랜서 일을 가끔 했지만 3년 전 아이를 낳으면서 이마저도 그만둔 상태였다. 기업들의 하청을 받다 보니 일감이 폭주하거나 마감일을 맞추기 어려운 때도 많았다. 그래서 육아와 병행하기 어려웠다. 박 씨는 “온라인 재능거래는 내 사정에 따라 작업량과 마감일을 조절할 수 있는 게 가장 좋다”며 “지금까지 재능거래로 1800만 원 넘게 벌었다”고 말했다.
○주목받는 재능 오픈마켓
디자인, 번역 등 개인들이 자신의 재능을 온라인에서 직거래할 수 있는 ‘재능 오픈마켓’이 주목받고 있다. 재능 오픈마켓의 수요자인 중소기업 또는 자영업자들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전문 인력을 프로젝트별로 고용해 과제를 해결할 수 있고, 공급자인 프리랜서들은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일할 수 있어 ‘윈윈’이다. 온라인으로 직거래가 가능해 비용도 아낄 수 있다. 시간과 거리에 제약이 없어 국경을 초월한 거래도 이뤄진다.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업체는 2011년 6월 문을 연 크몽이다. 간단한 본인 인증 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판매할 수 있다. 크몽은 거래비용의 20%를 수수료로 받는다. 첫해 거래 건수는 3000여 건이었다. 올해는 2분기(4∼6월)에만 9000건이 거래됐다. 지난해 말엔 와우텐, 두포 등 후발주자들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경력이 단절된 여성, 부업을 찾는 직장인, 사업 아이템을 찾는 예비창업자 등 일반인들이 재능 오픈마켓을 통해 전문가로 변신하고 있다. 박연조 한국산업관계연구원 연구원(43)은 크몽에서 2년 동안 500여 건의 웹툰을 그려주며 1175만 원의 부수입을 올렸다. 최근에는 국가브랜드위원회로부터 700만 원을 받고 35회짜리 웹툰을 연재하기도 했다.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지상봉 씨(35)는 온라인으로 한글 서명을 제작해주고 2년간 약 970만 원을 벌었다. 신용카드를 결제할 때 등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서명은 건당 5000원, 회사 서류 결재용 서명은 1만5000원, 기업 대표들이 쓸 만한 서명은 4만 원을 받고 판다. 지 씨는 “연예인 지망생, 회사원, 프로게이머 등 고객들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사이버 교습까지
재능 오픈마켓은 온라인으로 손쉽게 연결되고 불황 탓에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해외에서는 이미 보편화돼 있다.
2005년 미국에서 시작한 오데스크는 세계 최대 온라인 인력중개 회사다. 구직자가 자신의 능력을 웹사이트에 올리면 페이스북, 구글, HP 등 기업들이 단기 일감을 준다. 이곳에서 중개하는 일감의 종류는 소프트웨어 제작, 회계 등 12만 개에 이른다. 한 달 거래대금은 약 3000만 달러(약 333억 원)어치다. 교육 수준이 높고 인건비가 비교적 싼 인도인들이 전체 계약의 3분의 1을 수주하고 있다. 오데스크는 거래 비용의 10%를 수수료로 받는다.
2006년 인도에서 시작한 튜터비스타에서는 인도, 미국, 영국, 중국 출신 교사 2000여 명이 영어, 수학, 물리학 등 사이버 개인교습을 하고 있다. 가격은 시간당 20달러 안팎이다. 이곳을 통해 이뤄진 사이버 개인교습은 819만6000건이나 된다.
박성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재능 오픈마켓에서 판매자는 수익뿐 아니라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구매자는 싼값에 다양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다”며 “재능 검증의 신뢰성을 높인다면 재능거래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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