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안늘리고 복지 확대 ‘착한정부 콤플렉스’ 벗어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세제개편안 후폭풍/복지&증세… 동아일보의 제언]
정부-여당, 국민에 솔직 고백을

정부는 결국 ‘중산층 증세(增稅)’라는 거센 비판에 고개를 숙였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법 개정안을 둘러싼 혼란에 대해 사과했다. 세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해답 없는 구호에 매달린 정부와 여당에 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제시한 복지 공약을 모두 이행하기 위해서는 135조 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인 연간 27조 원의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135조 원 가운데 84조 원은 정부 살림살이를 줄여서, 나머지 51조 원은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이번 세법 개정안을 통해 ‘증세 없는 복지’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구호라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사실상 ‘증세’에 대한 거센 반발을 불러온 이번 세법 개정안이 예정대로 시행됐더라도 연간 세수 증대 효과는 3조 원가량에 불과했다.

세법 개정안 수정으로 이제 정부와 여당은 복지재원을 마련할 방안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증세 없는 복지재원 마련 방법 가운데 아직 남아 있는 카드는 크게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감면 축소 등 세 가지다.

하지만 이 같은 재원조달 방안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연초부터 국세청이 ‘탈세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오히려 대대적 세무조사로 기업들의 반발이 거센 데다 일부 고액자산가가 재산을 현금으로 바꿔 장롱 속에 숨기는 바람에 시중에 유통되는 5만 원권 화폐가 사라지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애초에 뚜렷한 근거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로 5년간 27조20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한 강연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재원 마련이) 정부 목표에 비해 5조∼10조 원은 모자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세출 구조조정이나 비과세·감면 축소도 쉽지 않다. 세출 구조조정의 핵심인 도로와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축소는 지방자치단체나 정치권의 반대를 넘어서야 한다. 비과세·감면 혜택 역시 농업, 중소기업 등과 관련한 지원 비중이 63%에 이르는 것을 감안할 때 국회의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더욱이 실제로 복지공약을 하나씩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이 추정하고 있는 복지재원 135조 원보다 훨씬 많은 재원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원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세율을 올리지 않고 지하경제 척결로 조달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며 “비과세·감면 축소도 국회에 가면 한 건도 제대로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경제현실도 정부의 재원조달 계획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장기간의 침체로 경제 활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이미 올 상반기 목표액 대비 세수실적은 50%를 밑돌아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부진하다.

결국 정부와 여당이 ‘증세 없는 복지’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복지공약에 대한 속도 조절에 나서는 한편으로 국민에게 증세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세금도 더 걷지 않고 복지도 다 해주겠다”는 식의 현실성 없는 약속을 고집하기보다는 솔직히 고백하고 국민과의 대타협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증세 없는 복지처럼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내걸고 이를 고집하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은 정권이 적지 않다. 일본 민주당은 아동수당 지급 등 무상복지 공약을 고집해 재원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뒤늦게 증세를 추진하다 자민당에 정권을 내주기도 했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는 “대통령 임기는 아직 4년 이상 남았다. 공약에 얽매일 게 아니고 몇 년 앞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국가의 복지를 어떻게 할 것이고 이를 위해 세금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이번 기회에 매듭짓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새누리당#복지 확대#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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