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 직후 미 군정청 사령관인 존 하지는 “일본 주둔 미군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세 가지는 설사, 임질, 그리고 한국(에서의 근무)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던 하지 사령관의 발언임을 감안하더라도 당시 우리나라의 사정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처절한 예시가 아닌가 생각한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은 광복 이후 우리의 현대사를 기술한 책이다. 6·25전쟁 시 포병장교로 참전했던 그는, 강대국의 ‘경솔한 결정’으로 분단된 남과 북이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어떻게 투쟁해 왔는지, 그리고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에 어떻게 맞서 왔는지 정리하고 싶었다는 머리말처럼 그 과정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광복 후 역사지만 주로 1970년대 이후를 다루고 있는데 1972년의 7·4 공동성명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미군 철수론 등 남북 간의 협력과 갈등관계를 당사자들의 증언과 외교문서 분석 등을 통해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다. 1970년대 초반까지 북한 경제가 앞섰지만 한국이 강력한 수출 주도 성장정책으로 튼튼해진 경제 기반을 가지고 1980년대 이후 민주화 과정과 88 서울 올림픽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제고해나가는 데 비해 내수 위주의 폐쇄경제정책과 1인 권력체제를 고수하면서 뒤처지는 북한의 사정이 잘 비교되어 있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는 북한 핵문제의 전개 과정이 자세히 분석되어 있다. 저자가 미국 언론인이다 보니 미국 측의 내부 사정이 꽤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어 북핵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지정학적 특성상 강대국 사이에서 국가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지난 반세기의 경험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G2로 다시 부상하는 중국 등 새로운 국제질서 아래서 우리가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온고지신의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광복 때 남북을 갈랐던 38선은, 일본이 러일전쟁(1904년) 전에 러시아에 한반도를 나눠 갖기 위해 제안했었다는 사실과 남북의 분단 과정에 참여한 미국 관계자가 “(38선을) 20세기 초 일본이 이미 제안했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다른 군사분계선을 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을 보면서 국가가 반드시 강해져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정전 60년이 된 올해 실시한 역사인식 조사에서 반수가 넘는 젊은이들이 6·25전쟁의 발발 연도를 모르거나 남침인지 북침인지조차도 제대로 구별을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큰 충격을 주었다. 손자병법에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말이 있다. 요즘 많은 분들이 지구 곳곳을 여행하면서 다른 나라 알기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조사 결과를 보면서 정작 우리 역사 알기에는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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