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브랜드숍 4년새 2400개 늘어 포화… 경쟁 심해져 가맹본부-가맹점주 갈등
업계 1위 미샤, 5년반만에 영업익 적자
화장품 브랜드숍들이 빼곡히 들어찬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는 길 맞은편에 같은 화장품 브랜드 가게가 입점해 경쟁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한국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외국 관광객들로 거리가 북적이는데도 길 양편에 늘어선 화장품 브랜드숍(한 브랜드로만 된 매장)들은 대부분 한산했다.
손님 하나 없는 매장을 지키고 있던 A브랜드숍의 점주는 “명동에만 100개가 넘는 브랜드숍이 몰려 있고 같은 브랜드 직영점과 가맹점이 경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며 “가게 앞에 나가 모객도 해보지만 손님을 불러들이기가 너무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몇 년간 저렴한 가격,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인기를 끌던 화장품 브랜드숍들이 최근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종 업체 간, 동일 브랜드 점포 간의 과도한 경쟁으로 이익을 내기 어려워지자 본사와 가맹점주의 분쟁이 늘고 있어 이전에 편의점 업계에서 벌어졌던 일이 화장품 업계에서 재현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주요 상권 점령한 브랜드숍
최근 몇 년 사이 화장품 브랜드숍 수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거래시스템 등에 따르면 미샤, 더페이스샵, 에뛰드하우스 등 주요 7개 브랜드숍은 2009년 2000여 개에서 올해 상반기에 4400여 개로 늘었다. 브랜드별로 5년간 2∼5배로 지점이 늘어난 것. 한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화장품 브랜드숍은 주요 상권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게 특징”이라며 “이 정도면 수익을 낼 수 있는 경계선을 이미 넘어선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더페이스샵’을 운영 중인 LG생활건강의 색조전문 브랜드숍 ‘VDL’, 소망화장품의 ‘오늘’ 등 신규 브랜드숍 들이 최근에도 속속 새로 생겨나면서 가맹점 수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특정 상권에 브랜드숍들이 밀집하면서 ‘제 살 깎아 먹기 식 경쟁’도 늘고 있다. ‘세일 남발’이 그 대표적 현상이다. 2009년에 주요 5개 브랜드의 연중 할인일수는 76일이었지만 2012년에는 240일로 껑충 뛰었다. 사실상 ‘연중 세일’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본사 실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샤 브랜드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는 올해 2분기(4∼6월)에 21억 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2007년 4분기(10∼12월) 이후 5년 반 만의 첫 적자다.
○ “출점 규제해라” 분쟁도 증가
포화 상태로 수익성이 떨어지자 브랜드숍 가맹점주들의 불만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근접 출점’이나 불공정 거래 등을 놓고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는 업체도 늘었다.
근접 출점으로 피해를 봤다며 가맹본부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 중인 C브랜드숍의 가맹점주는 “길 건너편 50m 거리에 같은 브랜드의 로드숍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60% 이상 줄었다”면서 “본사가 상권을 보호하려는 기본적인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 전문가들은 이미 시장이 커질 대로 커진 상태에서 불황까지 겹쳐 향후 브랜드숍들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한국희 연구원은 “중소업체 중심으로 수익성 악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대기업 위주의 시장 재편 등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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