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반년가량 앞두고 5000만 원의 전세금 대출을 받으려는 직장인 안모 씨(30)는 요즘 걱정이 생겼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가시화되면서 국내 대출금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가 많기 때문이다. 안 씨는 2010년에도 ‘반전세(보증부 월세)’ 보증금이 부족해 저축은행에서 고금리로 550만 원을 빌린 적이 있다. 안 씨는 “3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갚느라 엄청 고생했는데 다시 그런 상황이 오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미국이 조만간 양적완화 축소(돈줄 죄기)에 나서면 한국의 저소득층이나 다중채무자들의 이자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26일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가 국내은행 경영안정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분석했다.
보고서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국내 금융회사들이 대출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으며 이럴 경우 저소득층, 다중채무자, 담보인정비율(LTV)이 높은 가구 등의 이자 부담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소득 1분위(하위 20%)의 이자부담률(연간소득에서 이자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5월 말 현재 10.8%에서 12.4%로 1.6%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추산됐다. 예를 들어 1분위에 속하는 연간소득 2000만 원인 가구가 연간 부담하는 이자비용이 216만 원에서 248만 원으로 높아진다는 얘기다.
한은은 1분위의 이자부담률 상승폭이 2, 3, 4분위에 비해 더 클 것으로 예상했다. 소득 5분위(상위 20%)의 경우 이자부담률이 10.7%→12.6%로 1.9%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1분위에 비해 오름폭이 약간 크지만 고소득층은 여윳돈이 많아 저소득층에 비해 대출 부실화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보고서는 또 은행들이 채무 상환 가능성이 더 높은 개인이나 기업에 대한 대출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비우량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악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비우량 중소기업에는 돈줄을 죄고 우량 대기업에만 자금을 대려는 ‘대출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같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은행권의 기업대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4∼2006년 13% 안팎에서 올 3월 말 25.5%로 급등했다.
한편 한은은 은행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은행권의 요주의 이하 부실채권이 4조1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은행이 대출금리를 1%포인트 올리면 이자 수익이 1조3000억 원 정도 늘겠지만 이 같은 부실채권 증가로 1조3000억 원가량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는 만큼 수익성 측면에서 반드시 유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 금융검사분석실의 김용선 팀장은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해 대출금리를 부당하게 올리거나 LTV가 높은 가구의 가계대출을 과도하게 회수하지 못하도록 감독당국이 감독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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