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운영해온 39년간 늘 위기는 기회였습니다. 어느 때보다 패션기업을 경영하기 힘든 지금,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시작했습니다.”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세정그룹 서울지사에서 만난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67)은 사옥 1층에 자리 잡은 ‘웰메이드’ 매장을 소개하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애지중지 키운 어린 자식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부모처럼 설레면서도 긴장된 표정이었다.
웰메이드는 ‘국민의 옷집’을 표방하는 일종의 편집숍이다. 남성 캐주얼 브랜드 ‘인디안’을 필두로 여성 캐주얼 ‘앤섬’, 아웃도어 브랜드 ‘피버그린’, 글로벌 스포츠브랜드 ‘써코니’ ‘고라이트’ 등 세정이 판매하는 주요 브랜드들이 모두 입점한다. 기존 ‘인디안’ 매장보다 젊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상품 구색이 특징이다.
통합 유통 브랜드 웰메이드가 출범하면서 세정의 대표 브랜드인 ‘인디안’ 매장은 모두 웰메이드로 흡수됐다. 전국 380개 인디안 매장이 모두 웰메이드로 간판을 바꿔 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이날 이번 브랜드 전환 작업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패션업계의 불황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39년 전통의 인디안 브랜드 간판을 포기하는 데는 큰 고민이 있었다. 박 회장은 “잘나가던 도매시장 사업을 1988년 대리점 체제로 전환했을 때,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다른 업체들이 대리점을 철수하는데 신규 캐주얼 브랜드 ‘니(NII)’ 매장을 늘려 나갈 때 모두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온 세정은 2011년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국내 5위 규모의 패션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잘나가던 세정에 최근 2년 새 위기가 찾아왔다. 박 회장은 “해외 SPA(제조유통일괄형) 브랜드가 직격탄이 됐다”고 말했다. ‘유니클로’ ‘자라’ 등 해외 브랜드들이 저렴하고 빠르게 신상품을 선보이면서 기존 브랜드들의 매출이 정체된 것이다.
SPA 브랜드들처럼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세정그룹의 ‘웰메이드’는 매장이 위치한 상권의 특성에 맞춰 입점 브랜드를 달리할 예정이다. PB(자체브랜드) 상품인 ‘웰메이드 프로덕트’도 선보일 예정이다. 웰메이드 프로덕트는 중장년층도 즐겨 입을 수 있는 SPA 브랜드를 표방한다.
이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위해 세정그룹은 26일 창사 이후 첫 기자간담회도 마련했다. 웰메이드는 내년까지 20개 매장을 추가로 확보해 전국에서 총 400개 매장을 운영할 예정이다.
웰메이드 출범까지 세정그룹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인디안은 1년 전 정장 브랜드 ‘인디안 리더스’를 통해 날씬한 디자인의 양복을 선보였다. 내년이면 40주년을 맞는 인디안을 보다 젊게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기존 중장년층 고정 고객들이 좋아하지 않았으니까요. 이 브랜드는 ‘브루노 바피’라는 신규 브랜드로 대체됐습니다. 새 브랜드는 트렌드 세터를 위한 날씬한 라인과, 중장년층을 위한 대중적인 라인을 모두 아울러 선보입니다.”
매장 이름을 바꾼 건 해외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포석이기도 하다. 미국 대륙의 특정 종족을 지칭하는 브랜드로 수출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인디안은 1981년부터 4차례나 중국 시장 진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박 회장은 “당시 중국 쪽으로는 인사도 하기 싫을 정도로 좌절이 컸다”면서 “웰메이드로 다시 한 번 아시아 시장에 대한 ‘복수전’에 나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