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광희 씨(44)는 2일 IBK기업은행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 은행 출신인 이 씨가 14년 만에 다시 출근하게 된 것이다.
그는 1999년 2월 은행을 그만둔 날을 잊지 못한다. 여고 졸업 후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딘 일터여서 애착과 긍지도 컸다. 태어난 지 3개월 된 딸과 3세 된 아들 양육 때문에 11년 2개월간 다닌 기업은행(당시 중소기업은행)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
직장을 포기하고 키운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큰아이는 고3, 작은아이는 중2가 됐다.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게 되자 그는 다시 ‘내 일’을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10년 넘게 전업주부 생활을 했던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었다. 정부의 일자리 활성화 대책에서 기회는 왔다. 기업은행에서 정년이 보장되는 ‘시간제 근로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보고 즉시 지원서를 제출했고 2일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 씨는 “오랫동안 했던 일이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업무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남보다 2배, 3배 노력해서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기업은행이 은행권 처음으로 시간제 근로자 합격자를 발표한 이날 이 씨처럼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이 많았다. ‘능력은 있으나 경력이 단절된’ 주부 합격자들이었다.
2005년 한 시중은행에서 명예퇴직한 주부 강미경 씨(39)도 비슷한 사례다. 강 씨는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둘째는 4세였는데 마땅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은행을 그만둬야 했다”며 “소중한 기회가 주어진 만큼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정년이 보장되는 시간제 근로자 110명을 채용했다. 당초 100명을 모집할 예정이었으나 우수한 인력이 많아 10명을 추가로 뽑았다. 7월 모집 공고가 나간 뒤 몰린 지원자가 2300명이었다. 합격자들은 21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셈. 이들 중 100여 명은 10년 남짓 은행 근무 경력이 있는 30대 후반∼40대 중반 주부들이었다.
기업은행의 시간제 근로자로 일하면 하루 4시간 일하게 된다. 기업은행은 공단 지역이나 유동 인구가 많은 영업점 등 특정 시간대에 한꺼번에 고객이 몰리는 곳과 전화 상담이 많은 고객센터에 이들을 배치할 계획이다.
이승은 인사부 채용팀장은 “면접을 해보니 그동안 일에 목말라하는 분이 많았다”며 “합격자 중에는 은행 경험도 많고, 열정도 신입사원 못지 않은 분이 많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번 기업은행의 시간제 근로자 채용은 금융권에서는 첫 시도다. 기업은행의 인사 정책은 매번 발표할 때마다 큰 관심을 끌었다. 조준희 행장 취임 이후부터 시작된 원샷 인사, 파격 인사, 계약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특성화고 인재 채용, 기초생활수급자 및 다문화 가정 채용 등은 은행권의 ‘인사 트렌드’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시간제 근로자 채용도 조 행장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기업은행은 올해 하반기 신입행원 220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13일까지 기업은행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한다. 올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공단지역과 제조업 등 중소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경험자를 대상으로 별도 채용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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