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 위치한 유럽디자인연구소 사무실 전경. 이곳에서 LRL과 PIT 직원들은 현지에 최적화된 제품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직원들의 창의적인 발상을 격려하기 위해 당구대와 오픈 회의실 등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삼성전자 제공
같은 백인이라도 사는 지역에 따라 냉장고를 사용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식단과 식사 습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인은 자유롭게, 최대한 많이 저장할 수 있는 ‘통 큰’ 냉장고를 선호하는 반면 꼼꼼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유럽인은 가족 구성원별로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 ‘정리정돈형’ 냉장고를 찾는다. 글로벌 생활가전 업체들이 지역 특성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다.
2015년 글로벌 생활가전 1위가 목표인 삼성전자 역시 이 같은 이유에서 지난해 미국 새너제이와 영국 런던, 중국 베이징(北京), 인도 델리, 싱가포르에 ‘라이프스타일 랩(LRL)’을 열었다. 이곳은 일종의 지역 연구개발(R&D)센터로 현지의 문화연구소 등과 협력해 각 지역의 의식주부터 가족문화, 교육, 교통, 자연, 미디어 등을 연구한다. LRL에 소속된 50여 명의 연구원은 심리학 전공자, 엔지니어, 벤처기업가 등 다양한 분야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이윤철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속에는 의외의 연결고리가 굉장히 많다. LRL은 그런 연결고리들을 면밀히 분석해 포괄적인 제품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음식에 양념을 많이 넣거나 대중교통이 발달한 지역일수록 소비자들이 옷의 청결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이는 강력한 세탁력이 장점인 세탁기에 대한 선호로 이어진다. LRL이 최근 낸 보고서 역시 ‘2017년에는 집의 형태가 어떻게 변할까’, ‘새로운 형태의 미국 가족’ 등 직·간접적으로 제품 개발에 다양한 영감을 제공하는 내용들이다.
LRL이 거시적인 지역 연구를 마치면 이를 바탕으로 실제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해답’을 내놓는 조직이 ‘프로젝트 이노베이션 팀(PIT)’이다. LRL에 앞서 2007년부터 LRL과 같은 5개 지역에서 출범한 PIT는 소비자의 실질적인 니즈를 분석해 이를 제품으로 완성하는 역할을 한다. 북미용 4도어 프렌치 냉장고와 유럽형 스마트TV 인터페이스, 중국 시장용 백라이트 키보드 노트북은 모두 PIT의 손을 거쳐 개발된 현지화 제품이다.
3일(현지 시간) 런던 중심가의 삼성전자 유럽 디자인연구소 내 PIT와 LRL 사무실을 찾았다. 직원들의 창의력을 최대한 살려주기 위한 다양한 요소가 곳곳에서 보였다. 연구원들 자리 사이에 당구대가 놓여 있어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땐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한쪽 벽면에는 제품 스케치부터 신문 스크랩, 명언 등 직원들이 생각날 때마다 붙여놓은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었다. 이 상무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처럼 한번 들어오면 나가고 싶지 않은 사무실로 만들기 위해 가구와 벽지도 발랄하게 꾸몄다”고 설명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은 “LRL과 PIT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별 소비자들이 ‘우리를 위해 우리 지역에서 직접 디자인한 제품’이라는 감동을 받게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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