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이 고빈다라잔 미국 다트머스대 턱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의 ‘리버스 이노베이션(역혁신)’은 지금까지의 혁신에 관한 선진국 중심의 생각을 180도 바꿔놓은 이론이다. 역혁신은 미래의 기회가 선진국 시장이 아니라 신흥개발국 시장에 있으며 신흥개발국에서 이뤄진 혁신, 즉 역혁신이 결국 선진국 시장으로 역류하게 된다는 의미다. 고빈다라잔 교수는 선진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가격이나 성능을 낮춰 신흥시장에 내놓지 말고 신흥개발국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현지에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이 책을 사서 나눠줬고 지난달에는 저자인 고빈다라잔 교수를 초청해 임직원에게 강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롯데그룹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고빈다라잔 교수를 만나 전략과 혁신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 전문은 DBR 137호(9월 15일자)에 실렸다.
―당신은 대표적인 전략과 혁신 전문가다. 전략은 무엇이고 혁신은 무엇인가.
“전략은 미래의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미래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다르게 말하면 바로 혁신이다. 그리고 혁신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새롭고 다른 것을 하는 것이다. 즉, 전략=미래의 리더십=변화에 적응=혁신이다. 그러므로 전략은 곧 혁신이다.”
―역혁신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 달라.
“역사적으로 기업들은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혁신을 한 후 제품을 인도같이 가난한 나라에서 팔았다. 역혁신이란 이런 과정을 완전히 반대로 하는 것이다. 가난한 국가에서 혁신을 한 뒤 선진국으로 제품을 가져가 판매하는 것이다. 이 역혁신이 시사하는 바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역혁신은 기업들이 ‘향후 수십 년에 걸쳐 가장 큰 기회는 비소비계층을 소비계층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잡기 원한다면 근본적으로 혁신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 가격은 극적으로 낮추고 높은 질, 극대화된 성능과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역혁신을 이루면 세계적인 불균형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기업들에 이런 역량, 기술, 인력을 활용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불균형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혁신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합해서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역혁신을 실행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역혁신을 실행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실행이 핵심이다. 혁신은 그냥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실제로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혁신은 가난한 나라에서 혁신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에는 그런 국가들에 자원을 배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혁신을 시작한다고 하면 아프리카에 제조, 마케팅 등의 기능을 배치해야 한다.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미국 회사는 미국 땅에 앉아서 아프리카에서의 혁신을 주도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혁신은 되지 않는다. 최고경영자들 또한 그곳에 가서 현지의 이슈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의 자원에 있다. 의사결정도 현지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어떤 혁신의 실행이든 전담팀이 필요하다. 신흥국가에서 혁신을 진행할 것이라면 신흥국에 혁신 전담팀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해외 지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외의 많은 이유로 기업들이 의사결정권을 내려놓기는 매우 힘들 것 같다.
“통제력을 내려놓는 것과 결정의 대리권을 주는 것은 다르다. 결정권한을 부여하면서도 통제력을 가질 수 있고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지금 당장 기존의 결정권자가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지 않을 뿐이다.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은 의사결정 구조가 중앙 집중화돼 있다. 결정권한을 넘겨주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언제나 통제력을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한다.”
―신흥시장에서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방금 화성에 착륙했다고 가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선진 시장에서 성공을 누렸던 기업들이 성공방식을 내려놓고 신흥시장에서 백지 상태로 다시 시작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미국에서 성공하면 그 성공 자체가 문제를 만들어버리는 거다. 미국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했던 일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겸손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겸손하지 않다면 신흥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필요해질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겸손이 핵심이다.”
―노키아는 인도 시장에서 혁신을 통해 성공했지만 지금은 부진하다. 반면 애플은 역혁신을 잘 실행해나가고 있는 회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재 성공을 누리고 있다.
“노키아는 신흥시장에 집중을 했지만 스마트폰에서 좋은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반면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의 리더다. 그러므로 애플에 글로컬리제이션(세계화와 현지화의 합성어)이나 역혁신은 중요하지 않다. 노키아는 부유한 고객층을 공략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놓쳤다. 그들은 그저 신흥시장에만 집중했다. 역혁신이 중요하다고 해서 신흥시장, 가난한 나라에만 올인하는 것은 위험하다. 선진국 시장도 중요하다. 그리고 애플도 더 이상 시장의 리더는 아니다. 애플은 요즘 그들이 더 이상 중국이나 인도에서 리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런 시장에서는 저비용의 경쟁자들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혁신을 믿지 않는 기업도 있다.
“미국의 자동차산업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일본 경쟁자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960, 70년대에 일본 회사들은 싸구려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1980년대에 와서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역사 속에는 문제를 부인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이러한 사례가 굉장히 많다. 정말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면 성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성장은 혁신이 필요한 세계 어딘가에 꼭 있다. 이것이 성장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에서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에 해주고 싶은 충고는….
“정말 성공적으로 역혁신을 이뤄내고자 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통제력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의사결정권을 쥐고 싶어 하지만 놓아줘야 한다. 핵심은 현지 자원의 배치, 현지 인력의 활용, 자율권 부여 등을 통해 스스로 혁신하게 하는 것이다.”
::리버스 이노베이션(역혁신)::
혁신 전문가인 비제이 고빈다라잔 교수가 쓴 책의 제목이자 미래의 기회는 선진국 시장이 아니라 신흥개발국 시장에 있으며 신흥개발국에서 만들어진 혁신은 선진국과 본국 시장으로 역류하게 되어 있다는 내용의 이론이다. 선진국에서의 혁신을 신흥시장에 적용해왔던 기존 이론을 뒤집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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