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버블티(Bubble Tea) 전문점. 주문대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과 음료를 기다리는 이들로 매장은 북적이고 있었다. “당도와 얼음 양은 어느 정도로 해 드릴까요”란 직원의 질문에 고객들은 각자 취향에 따라 주문을 마치고 대기표를 받았다. 밀크 버블티를 주문한 박세연 씨(29)는 “평소 커피를 습관적으로 여러 잔 마시다 보니 건강을 생각하게 됐다”며 “곳곳에 차 전문점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다양한 차 맛도 마음에 들어 커피 대신 차를 마시기로 했다”고 말했다. ‘커피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인 국내 음료시장에서 차(茶)의 역습이 거세지고 있다. 》
소비자들의 취향 다변화 바람을 탄 차 전문 브랜드들은 커피숍들이 포진한 주요 상권에 잇달아 진출 중이다. 수입 차 프랜차이즈도 젊은층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차 브랜드들의 약진에는 대형 커피 체인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한몫을 했다. ○ 꿈틀대는 茶 시장
차 전문 브랜드 ‘오설록’의 올해 1∼8월 전국 매장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나 늘었다. 신규 고객은 72% 증가했는데 이 중 20, 30대 젊은층의 비율이 70%를 넘는다. 이런 성장세는 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데다 젊은층을 겨냥한 제품 다양화가 좋은 반응을 얻은 덕이다. 오설록은 국화와 난(蘭)꽃, 영귤(라임과 비슷한 감귤류 열매) 등을 찻잎과 섞은 ‘블렌딩 티’로 젊은층을 공략해 왔다.
‘차오름’, ‘오가다’ 등의 전통차 프랜차이즈도 저변을 확대해 가고 있다. 한국식 디저트 카페를 표방하며 2011년 설립된 차오름은 올해 초 ‘본죽’ 등을 운영하는 본아이에프에 인수됐다. 중견 외식업체가 신생 전통차 브랜드에 투자를 결정한 것은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올해 들어 차오름 주요 매장의 매출은 지난해 대비 약 15% 상승했다. 2009년 문을 열어 전국에 70개 매장을 운영 중인 한방차 전문점 오가다도 국내 핵심 상권에 진입한 데 이어 최근 일본, 중국, 대만 등 해외로 진출했다.
버블티로 대표되는 수입차 전문점 열풍은 최신 유행이다. 현재 대만의 차 전문점 ‘공차’를 비롯한 버블티 브랜드들이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버블티는 홍차, 우롱차, 녹차 등의 잎차에 우유를 섞은 후 ‘타피오카 펄’(열대식물 뿌리에서 채취한 젤리를 구슬 모양으로 만든 것)을 넣은 음료다. 공차 측은 “지난해 하반기 한국에 진출한 이후 직영점만 운영하다 올해 2월 가맹사업을 시작했다”며 “8월 말 현재 총 77개 매장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공차는 올해 말까지 100호점을 돌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버블티의 인기에 힘입어 ‘버블트리’ 등 토종 버블티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성업 중이다.
○ 규제 속 틈새시장
차의 인기 요인 중 가장 큰 것으로는 커피 대신 다양한 음료를 원하는 소비층이 확대된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스스로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른바 ‘포미(for me)족’은 건강음료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녹차는 2002년 미국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10대 건강식품’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이런 트렌드에 힘입어 차 음료 시장이 계속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승윤 오가다 대표는 “지난해 미국에서 스타벅스가 차 전문점 ‘티바나(Teavana)’를 인수하는 등 유명 커피 전문점 브랜드들은 이미 커피 이외의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며 “참살이(웰빙) 열풍이 지속되는 한 차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 전문점들은 또한 젊은 세대를 새로운 소비층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오설록처럼 여러 재료를 섞은 블렌딩 제품을 선보이거나 당도, 얼음 양 등을 직접 조절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단순히 건강에만 좋은 ‘웰빙 푸드’를 넘어 보기에도 좋은 ‘스타일 푸드’를 표방한 녹차 디저트 등 새 메뉴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일반 커피숍처럼 커피 음료를 함께 판매해 커피 수요층까지 동시에 겨냥할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의 장점이다. 차오름의 경우 스타벅스의 기존 매장 옆에 새 매장을 내 일종의 편승효과를 노리는 전략을 펼치면서 커피 수요를 끌어들이고 있다.
한편 국내 커피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정부의 규제가 본격화된 점도 차 전문점 급성장의 이유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동일 브랜드 커피 가맹점이 기존 점포 반경 500m 안에 신규 출점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현재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수익은 감소 또는 답보 상태다. 카페베네는 올해 1분기(1∼3월)에 5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커피빈코리아의 지난해 영업이익(52억 원)은 전년보다 50% 가까이 줄었다. 스타벅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47억 원으로 전년보다 6%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강병오 중앙대 겸임교수(창업학)는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있는 데다 커피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틈새 수요를 노린 ‘논 커피(Non coffee)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아직까지도 한국의 1인당 연간 커피소비량은 미국, 캐나다 등의 절반 수준도 되지 않기 때문에 차 전문점들이 커피 전문점만큼 규모가 커질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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