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침체됐던 부동산시장이 ‘8·28 전·월세 대책’ 이후 다시 꿈틀대고 있습니다. 미분양 시장에 활기가 돌고 수도권 집값은 2년 만에 반등했습니다. ‘시장 분위기의 척도’인 경매시장은 어떨까요.
부푼 기대를 안고 수원지법으로 향했던 13일 오전 8시.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올가을 들어 첫 호우주의보가 발령돼 시간당 30mm가 넘는 비가 시야를 가렸습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가 보니 모조리 ‘기우’더군요.
수원지법 별관 경매법정 앞에는 입찰을 시작하기 1시간 전인 9시부터 시장통이 따로 없었습니다. 투자자를 비롯해 경매정보지 업체 직원, 대출상담사, 경매학원 수강생 등 이른 시간에도 50여 명이 몰려있더군요. 경매정보지를 나눠주던 한 직원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정보지를 80개 겨우 돌렸는데 요즘은 150개 넘게 돌릴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대출상담사 A 씨는 “전세로 고생하던 중 8·28 대책이 발표되고 아파트 값이 오른다고 하자 실수요자들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슨 물건인데 저렇게 사람이 몰렸어?”
오전 11시 40분 입찰이 끝나고 법원 직원 2명이 입찰표를 정리하자 지켜보던 응찰자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입찰표를 담은 서류가 20개 넘게 수북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물건은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 전용면적 37m²짜리 아파트. 감정평가액이 2억2800만 원이지만 한 차례 유찰돼 최저응찰가격이 1억5960만 원으로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소형아파트에 임차인도 없어 실수요자들이 몰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날 수원지법 경매10계에 나온 85건의 물건 중 5건에 10명 이상의 응찰자가 몰렸습니다.
낮 12시 10분, 당첨자 발표가 시작되자 56개의 좌석이 있는 경매법정에 130여 명이 빼곡히 들어찼습니다. 등에는 갓난아이를, 한 손에는 입찰표를 쥔 젊은 엄마도 3명이나 보였습니다. 법정 안의 ‘입석’도 미처 잡지 못한 60여 명은 법정 밖 대형 스크린으로 경매를 지켜봤습니다.
원래는 경매물건 번호 순으로 발표를 진행하지만 이날은 법정이 너무 혼잡해 응찰자가 10명 이상인 ‘인기 있는 물건’부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당첨자가 나오면 관련된 사람들이 일시에 빠져 혼잡이 덜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깍지를 끼며 기도하는 40대 여성, 손을 꼭 잡은 중년 부부, 신혼으로 보이는 부부의 초조한 모습에 제 목까지 덩달아 마르더군요.
이날 경매에서 1차례 이상 유찰됐던 아파트는 대부분 낙찰가액이 80%가 넘었습니다. 20여 명이 몰렸던 아파트와 11명이 몰렸던 전용 41m²의 다세대주택은 감정평가액보다 1000만 원 높은 가격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낙찰되지 못한 사람들은 실망하면서도 애써 허탈한 표정을 감추기도 했습니다. 주부 박모 씨(46·경기 수원시)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하도 높게 불러서 감당이 안 돼 빚을 내서라도 내 집을 구해보러 왔는데…”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렇게 경매시장이 활기를 띨수록 투자자들이 주의해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경매브로커입니다. 이날도 감정평가액보다 1000만 원 비싸게 낙찰된 한 아파트의 단지에는 감정평가액보다 500만 원 싼 급매물 아파트가 3개나 있었습니다. 낙찰된 사람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고 더 비싸게 산 이유를 물으려 했더니 함께 온 50대 남성이 “말 걸지 말라”며 낙찰자를 잡아끌어 황급히 자리를 피하더군요.
함께 갔던 하유정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경매브로커는 낙찰이 돼야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고가입찰을 유도한다”며 “경매 초보자들은 ‘경매컨설팅 업체’라며 접근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9월 경기 지역의 아파트 경매물건 낙찰가율이 80%를 넘어섰습니다. 올 들어 처음으로 평균 응찰자 수도 7명을 넘어섰습니다. 서울도 비슷한 추세입니다. 눈으로 확인한 경매시장의 열기가 부동산시장에 불을 지필 수 있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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