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유수지 위 임대주택, 소음-냄새 불만은 거의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7일 03시 00분


정부 임대주택 사업 ‘행복주택’
도쿄-홍콩의 성공사례 탐방

일본 도쿄 메구로 강 둔치에 지어진 ‘메구로 임대아파트’. 건물 아래쪽에 유수시설이 있어 홍수 때 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아준다. 도쿄·홍콩=정민지 채널A 기자 jmj@donga.com
일본 도쿄 메구로 강 둔치에 지어진 ‘메구로 임대아파트’. 건물 아래쪽에 유수시설이 있어 홍수 때 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아준다. 도쿄·홍콩=정민지 채널A 기자 jmj@donga.com
박근혜 정부의 핵심 주거복지 공약 가운데 하나인 ‘행복주택’. 도심지 철도용지나 유수지(遊水池·홍수 등을 대비해 강 주변에 물이 임시로 머물도록 마련된 곳) 등을 이용해 무주택 서민과 신혼부부, 대학생 등을 위한 임대주택을 짓는 사업이다.

하지만 계획이 발표된 직후부터 지역 슬럼화와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다. 벌써부터 ‘제2의 보금자리주택사업’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반값 아파트를 짓겠다던 보금자리주택사업은 당초 목표(150만 채)를 한참 밑도는 실적(53만여 채·2012년 말 기준)만을 남긴 채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반면 일본과 홍콩에서는 1970년대부터 철도용지와 유수지에 서민용 임대주택을 건설해 주거복지 문제 해결과 효율적인 도시공간 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들 지역을 방문해 행복주택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봤다.

○ 기차가 있는 듯 없는 듯

홍콩 도심지 전철역과 연결된 주상복합아파트. 도쿄·홍콩=정민지 채널A 기자 jmj@donga.com
홍콩 도심지 전철역과 연결된 주상복합아파트. 도쿄·홍콩=정민지 채널A 기자 jmj@donga.com
일본 도쿄 외곽에 위치한 이타바시 구에 있는 니시다이역. 3, 4분에 한 대씩 전동차가 멈춰서고, 하루 종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이 역의 출구와 연결된 계단을 따라가면 14층 높이의 아파트 4개 동이 자리 잡고 있다. 1970년 일본 최초로 철도 선로 용지를 활용해 지은 ‘니시다이 공영임대아파트’이다.

단지 내 풍광은 한국에서 보는 일반 아파트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밖에서 보면 지하철 열차를 세워두고 보수나 정비작업을 하는, 아파트 3, 4층 높이의 전동차 차고지 위에 올라서 있다. 차고지를 들락거리는 열차도 적잖다.

이 아파트 5층에 사는 모리 씨(37·주부)는 ‘아파트 아래로 열차가 다니는데 시끄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진동이나 소음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며 “전철역이 가까워 오히려 편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열차가 지날 때 지하철역에서 측정한 소음은 90dB(데시벨)이 넘었지만 아파트 베란다에서 창문을 열고 측정한 소음은 60dB 정도에 불과했다. 창문을 닫으면 조용한 사무실 수준인 50dB로 떨어졌다.

홍콩 주룽(九龍)반도 동쪽에 위치한 로하스파크역. 이곳에는 철도 선로 상부와 역 주변 지역으로 대규모 주상복합단지인 ‘로하스파크 캐피털’이 조성돼 있다. 최고 76층 높이의 아파트, 9개 동에 5200가구가 살고 있는 매머드 주거시설이다. 홍콩 지하철의 건설 및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홍콩철로유한공사(MTR)’는 이처럼 역세권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지어 주택난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MTR 역세권 개발사업의 기술자문을 맡고 있는 ‘ARUP’ 홍콩지사의 콴킨케이 이사는 “일반적으로 철도 선로 위에 덱(‘ㄷ’자 모양의 콘크리트 박스)을 씌우고 그 위에 집을 지을 때 덱 아랫부분에 고무벨트를 설치해 열차 소음과 진동을 줄인다”고 소개했다.

○ 벚꽃향 가득한 유수지

벚꽃으로 유명한 도쿄 메구로 강 일대. 교통이 편리해 임대료가 비싼 사무용 빌딩이 밀집한 이곳에 ‘메구로 임대아파트’가 있다. 메구로 강 둔치에 서 있는 이 아파트는 13층 높이의 한 동짜리 건물이다.

이 아파트 지하에는 물 20t을 저장할 수 있는 4층 높이의 공간이 있다. 큰비로 메구로 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유수시설이다. 메구로 임대아파트 방화관리 책임자인 가와카미 씨는 “메구로 강이 예전엔 여름철마다 범람해 주변 지역에 피해를 주곤 했다”며 “하지만 지난해엔 큰 태풍이 왔는데도 불어난 물이 유수시설로 흘러들어 피해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 시설은 아파트 단지 밑에 있지만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설계돼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물 냄새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아파트에 사는 야마카와 씨(50)도 “유속이 느린 메구로 강은 거의 고여 있는 편이어서 1년에 한두 번 냄새가 난다고 느끼는 정도”라며 “아파트 밑 유수시설에 물이 고여서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행복주택의 상하수도 설계 관련 자문에 응하고 있는 한국종합기술의 도종호 상무는 “유수지 위에 집을 지을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게 악취 제거이다”며 “이를 위한 다양한 기술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 선(先) 지역 활성화로 갈등 해소

일본 도쿄의 니시다이 전철역 차고지 위에 세워진 ‘니시다이 공영임대아파트’. 도쿄·홍콩=정민지 채널A 기자 jmj@donga.com
일본 도쿄의 니시다이 전철역 차고지 위에 세워진 ‘니시다이 공영임대아파트’. 도쿄·홍콩=정민지 채널A 기자 jmj@donga.com
홍콩 주룽베이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응아우타우콕 임대아파트’. 4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 6개 동으로 구성된 이 아파트는 2009년 입주를 시작해 현재 4500가구가 살고 있다. 단지 입구에는 주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헬스장과 농구장 수영장 등이 갖춰져 있고, 주민쉼터로 이용되는 잔디공원이 단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이 아파트 총관리자 램킴훙 씨는 “정부가 이 아파트를 지을 때 주변 거주자들을 위한 시설들을 함께 지었다”며 “쇼핑센터와 마트는 특히 주변 주민들도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또 “홍콩주택청이 아파트 단지의 30%를 녹지로 조성하도록 의무화하면서 단지가 공원 기능을 하게 돼 주변 지역의 슬럼화를 막았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의 임대주택 전담기구인 ‘도시재생기구(UR·Urban Renaissance agency)’는 임대주택을 지을 때 인근 지역민들이 원하는 시설을 아파트 단지에 설치한다. UR 총무팀 이시노 과장은 “이런 노력을 통해 지역 전체의 활성화를 유도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메구로 임대아파트도 단지 바로 앞에 주민 쉼터와 의료시설을 지어 지역주민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행복주택’사업의 경우 기존 주거지역에 임대주택을 짓기에 더 많은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도쿄·홍콩=정민지 채널 A기자 jmj@donga.com
#행복주택#임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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