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긴 장마가 끝나고 8월 찜통더위가 이어졌지만 주택매매시장은 빙하기였다. 정부가 4·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이후 3개월간 온기가 약간 돌다가 취득세 감면 혜택이 종료된 7월부터 거래절벽 상태로 다시 꽁꽁 얼어붙었던 것이다.
그러던 주택매매시장이 정부의 8·28 전·월세 대책 발표 이후 조금씩 꿈틀대고 있다. 위례신도시 등 수도권 택지개발지구를 비롯해 지방의 신규 분양시장에는 예비 청약자들이 본보기집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섰다. 최근에는 서울 아파트값이 14주 만에 반등했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전체 아파트값이 2년 7개월 만에 동반 상승하면서 집값 바닥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갖가지 할인 광고에도 파리만 날리던 미분양 아파트 분양사무실에도 막바지 할인 혜택을 보려는 수요자의 발길이 늘고 있다.
주택매매시장이 9월 들어 미약하나마 회복 조짐을 보이자 관망만 하던 수요자들의 머릿속이 조금씩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전셋값 급등 여파로 고생한 30, 40대 무주택 가장들이 주택 구매 여부를 저울질한다. 수도권 집값이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하기 시작한 이때 집을 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집값 장기 하락론’에 베팅해 계속 전·월세를 살아야 할 것인가. 미래는 알 수 없고 현실은 복잡해 어느 쪽을 선택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3가지 기본요소로 의식주(衣食住)를 꼽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집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공간’이다. 그와 동시에 주택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하나의 ‘투자상품’으로서도 기능한다. 거주와 투자의 이중적 속성을 지닌 것이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붐이 크게 일던 1970년대와 80년대, 2000년대에는 주택이 하나의 ‘투기 수단’이었다. 당시 국민 중에는 서울 강남지역 등에 있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나 일반 아파트를 사서 1~2년 만에 5000만 원 이상, 많게는 수억 원을 벌었다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자고 나면 오르는 집값에 자금 여력이 많지 않던 직장인도 대출받아 집을 샀다. 한 달에 수십만 원, 많게는 100만~200만 원 대출이자를 내더라도 매매차익이 훨씬 컸기 때문에 이자비용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고서 투기 대열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우리 경제 뇌관 ‘하우스 푸어’
그러다 2008년 9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됐다. 최근 4~5년 동안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값이 거의 반 토막이 날 정도로 집값이 급락했다. 1960년 이후 50년간 시장을 지배해온 ‘부동산 불패신화’가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이 여파로 수억 원씩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을 샀던 ‘하우스 푸어’(내 집 빈곤층)가 양산돼 지금까지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이 되고 있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대출 원리금을 감당하지 못해 경매로 집이 넘어간 사람이 줄을 잇고, 일부는 시세보다 수천만~수억 원씩 싸게 급매로 처분하는 바람에 집값 폭락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현재 우리 부동산시장은 이런 집값 폭락사태의 끝자락, 즉 회복과 장기침체의 기로를 헤매는 상황이다.
집을 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우리나라 집값이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 2002년 100.6%로 100%를 넘어선 데다, 인구증가율 둔화와 저성장 등 구조적 요인에 의해 앞으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낮거나 오히려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적인 거시경제 여건이 여전히 불안하고 국내 가계대출이 1000조 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대출 원리금 상환과 자녀 사교육비를 대느라 다른 여유가 별로 없는 가계 상황도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근거로 제시한다. 모두 일리 있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주택매매시장은 비관적인 전망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많다. 먼저 집값이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었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하는 주택보급률 100% 돌파와 인구증가율 둔화 통계를 정밀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반론이다. 주택 수를 가구 수로 나눈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것과 집값 추이 사이에는 주로 중·장기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값 폭락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에서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것은 1968년이지만 집값 상승은 ‘버블’이 붕괴한 91년까지 20여 년간 더 지속됐다. 집값이 인구구조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우리나라 인구증가율이 둔화하고 있긴 하지만 2030년까지는 인구가 계속 증가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30년까지 늘어나 5216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2031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앞으로 17년간은 인구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인구증가율 둔화를 근거로 주택 수요가 당장 급감할 듯이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집단적 분위기를 잘 타는 우리 국민의 속성상 집값이 반등하거나 경제 여건이 나아지면 다시 주택매매 쪽으로 시장 분위기가 돌아설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부동산시장의 미래는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그래도 몇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있다. 하나는 2008년 이후 우리나라 집값이 많이 내렸다는 점이다. 현재 전국 집값은 2006년 말 수준으로 내린 상태다. 지금이 바닥인지 아닌지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막 반등을 시작한 수도권 집값 동향과 수요자가 몰리는 신규 분양시장 상황은 주목할 만한 변수다. 경제 능력 초과한 대출 절대 금물
또 하나, 아직까지 집을 산 적이 없는 무주택자, 즉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가 올해 말까지 집을 사면 다양한 세제 및 자금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취득세가 전액 면제되고, 앞으로 5년간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도 면제된다. 또 부부 합산 연소득 7000만 원 이하인 무주택자가 시가 6억 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 아파트 등을 매입할 경우 국민주택기금으로부터 연 2.6~3.4%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부부 합산 연소득 6000만 원 이하 무주택자는 2.8~3.6% 이자로 대출이 가능하다. 시중은행의 장기 주택담보대출(이자 3% 후반~4% 중반)과 비교하면 이자가 훨씬 싸다.
따라서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언젠가는 내 집을 장만하겠다는 의사가 있는 무주택자라면 연말이 가기 전 집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 이왕 살 거라면 한 푼이라도 싸게 사자는 취지다. 단, 앞으로 주택매매시장이 회복된다고 해도 급등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본인의 경제 능력을 초과한 대출금으로 집을 사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또 모든 지역이 덩달아 오르는 대세 상승은 오기 어렵고 지역과 호재에 따라 주택가격이 차별화될 개연성이 크므로 수요가 지속될 수 있는 지역과 주택 유형을 고르는 눈이 필요하다. 이태훈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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