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주유소’ 속출… 감정가 128억짜리 경매나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1일 03시 00분


서울 천호동 ‘목좋은 곳’ 위치한 알짜… 주유소 中 역대 최고 감정가 기록
업계 불황에 10년새 매물 10배 급증

주유소 가운데 역대 최고 감정가로 경매에 나온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주유소. 감정가가 무려 127억7000만 원이다. 지지옥션 제공
주유소 가운데 역대 최고 감정가로 경매에 나온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주유소. 감정가가 무려 127억7000만 원이다. 지지옥션 제공
서울 강동구 천호동 지하철 5·8호선 환승역인 천호역 1번 출구와 50m 남짓한 거리의 한 주유소. 이 주유소는 소위 ‘목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천호대교와 올림픽대로 진입부에 있는 데다 인근에는 주택 밀집 지역과 천호동 로데오거리가 있어 오가는 차량으로 항상 붐빈다. 규모도 크다. 토지면적 1009m²에 유류 4만 L를 담을 수 있는 탱크시설 4개와 1만 L짜리 탱크 시설 1개, 그리고 주유기를 9개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목 좋고 시설이 좋은 이 주유소도 업계 불황을 피하진 못했다.

부동산 경매정보 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감정가 127억7000만 원에 달하는 이 주유소는 14일 동부지방법원에서 경매에 나온다. 역대 경매 시장에 나온 주유소 가운데 최고 감정가다. 2005년에 60억 원을 대출받아 시작한 이 주유소 소유자의 등기부상 빚은 현재 171억 원이나 된다. 은행과 개인채권자 등 4곳에서 중복으로 경매를 신청했다. 이 주유소는 지난해 4월에도 한 차례 경매가 신청됐다 철회된 바 있다.

이전까지 경매에 나온 주유소 최고가는 지난해 초 74억5000만 원에 낙찰된 경기 이천시 관고동의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소였다. 감정가는 120억100만 원이었지만 3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의 71.2%에 낙찰됐다.

최근 들어 주유소가 경매 물건으로 나오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 10년 전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난 추세다. 2003년 전국적으로 41건에 불과하던 경매시장에 나온 주유소는 2007년에는 100건 안팎으로 늘었다. 2010년 처음으로 200건이 넘었고 올해는 9월 말까지 429건에 달한다. ‘주유소 사장=부자’라는 공식은 옛말이 됐다는 게 경매업계의 평가다.

입지가 좋은 수도권에서도 주유소 경매 물건이 속출하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주유소 경매 건수는 2007년 9건에 불과했지만 이후 매년 증가해 올해는 186건에 이른다. 전국 주유소 경매 물건 대비 43% 수준이다. 과거에는 지방 외진 지역의 주유소가 주로 경매에 나왔다.

낙찰가격도 내려가고 있다. 2003년부터 2008년 사이에는 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인 낙찰가율이 100%를 웃돌았지만 2009년부터 80%대로 떨어졌다가 지난해부터는 70%대가 됐다.

정부가 지원하는 알뜰주유소도 경매에 나오고 있다. 인천 부평구 산곡동의 한 알뜰주유소는 감정가 24억3477만 원에 경매시장에 나왔다. 이 주유소의 반경 300m 안에는 주유소가 3개나 된다.

주유소 업계에 따르면 시장 규모와 수익성을 고려할 때 전국적으로 필요한 주유소는 7000∼8000곳. 하지만 전국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주유소는 1만2000여 곳(8월 말 기준). 이에 따라 앞으로도 경매에 나오는 주유소가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폐업한 주유소는 185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6개)보다 74% 늘었다.

하유정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주유소 부속 시설인 세차장이나 주유기, 창고 등은 경매 물건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낙찰 뒤에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입찰 전에 경매 대상 물건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며 “주유소를 용도 변경할 경우 시설 철거비용과 토양 정화비용이 들어가니 이것도 감안해 경매에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주유소#부동산#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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