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세 세입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한 ‘목돈 안 드는 전세1’의 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위해 대출을 받아주는 이 상품이 전세 수요는 많고 공급은 부족한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상품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목돈 안 드는 전세1’은 지난달 30일 6개 시중은행(신한, 우리, 하나, KB국민, IBK기업, NH농협)을 통해 판매가 시작됐지만 현재까지 계약은 한 건도 되지 않았다. 이 상품은 전세 계약 갱신 시 보증금 상승분을 집주인이 자신의 명의로 대출을 받고 세입자가 이자를 납부하는 상품이다. 세입자는 인상된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로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고 주택담보대출 이자만 납부하면 되므로 부담이 줄어든다. 금리는 최저 3.4%에서 최고 4.9% 정도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신용대출 금리보다 2∼3% 낮고 일반 전세자금 대출 금리보다는 0.5%포인트 정도 저렴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집주인이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기존 세입자를 배려해줄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목돈 안 드는 전세1이 효과를 거두려면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는 것보다 기존 계약을 유지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야 하는데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부동산 시장에는 전세주택 수요는 넘치지만 공급이 부족해 집주인은 쉽게 다른 세입자를 구할 수 있다.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집주인이 받는 전세보증금 대비 연간 월세 비율인 전환율도 평균 7∼8%대로 시장 금리의 2, 3배에 이른다. 집주인으로서는 전세 보증금에 연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부는 목돈 안 드는 전세1에 가입하는 집주인에게 대출금에 대한 소득세 비과세, 담보대출 이자 납입액에 대한 소득공제, 재산세·종합부동산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던 셈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정부가 전세 공급에 비해 수요가 적었던 1990년대 나온 논문을 바탕으로 제도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목돈 안 드는 전세1보다 한 달 앞서 출시된 목돈 안 드는 전세2의 실적도 저조하다. 이 상품을 이용하면 세입자가 보증금반환청구권을 은행에 넘기는 조건으로 기존 상품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1과 달리 2는 신규 전세 계약에도 적용된다. 6개 은행에서 판매를 개시한 후 두 달 동안 전체 판매 실적이 186건, 금액으로는 120억 원에 불과하다. 한 개 은행에서 하루에 평균 1건의 대출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입자가 목돈 안 드는 전세2 대출을 이용하려면 보증금반환청구권이 은행에 넘어가는 것에 대해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이 역시 집주인이 이런 동의를 해주면서 세입자를 구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 때문에 대출 실적이 저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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