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원화가치 2∼8% 저평가… 계속 지켜볼 것”
韓정부 “쏠림현상 미세조정 필요… 우리 할일 할 것”
환율 급락으로 인한 한국의 수출 경쟁력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한국의 환율시장 개입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섰다. 원화가치가 여전히 저평가돼 있는 만큼 환율이 더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31일 또다시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하면서 환율을 둘러싼 한미 양국 간 갈등이 불거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30일(현지 시간) 의회에 제출한 ‘국제경제 및 환율정책 반기 보고서’에서 “한국에 예외적인 환경에서만 환율에 개입하도록 지속적으로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 재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경제의 기초여건을 감안할 때 원화 가치가 2∼8% 저평가됐으며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260억 달러로 추가적인 외환을 확충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원-달러 환율 수준은 물론이고 해외 자본 유출에 대비한 외환보유액 규모 확대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미 재무부가 4월 의회 제출 보고서에서 “한국이 환율 상승 압력을 줄이기보다 거시건전성 규제를 통해 금융위험을 줄일 수 있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밝힌 것보다 더 강한 어조로 한국의 환율시장 개입을 경고한 것이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한국이 20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잇따라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원-달러 환율이 연중 최저치로 떨어지자 24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외환시장에 공동 개입한 바 있다.
또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예고한 양적완화 축소가 본격화되면 달러화 강세로 미국의 무역수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계감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미 재무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통화가치 저평가로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는 국가로 한국 외에도 대표적인 경상수지 흑자국인 중국과 독일, 일본을 집중 거론했다.
하지만 미국의 경고에도 외환당국은 31일 다시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다. 이에 따라 미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연기 소식으로 한때 달러당 1059.1원까지 내려갔던(원화가치는 상승) 환율은 상승세로 돌아서 오히려 전날보다 0.5원 오른 1060.7원에 장을 마쳤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이번 보고서로 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뀌지는 않는다”며 “우리가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처럼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세를 두고 한국과 미국의 분석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원화가치에 대한 양국의 시각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 한때 899.6원까지 내려갔던 만큼 환율이 아직 더 하락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한은은 2008년 이후 환율이 1050원 선 밑으로 내려간 적이 거의 없어 더이상의 환율 하락은 경제회복세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환차익을 보기 위해 국내 시장에 유입되는 투기자본도 적지 않은 만큼 지나친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미세 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날 세계경제연구원 20주년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미국의 양적완화가 축소되면 신흥국에서는 환율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과거와 같은 환율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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