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위치한 식품가공업체 A사는 지난달에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이 회사는 한 대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품을 납품했으나, 해당 대기업이 거래처를 옮기는 바람에 경영활동을 지속할 수 없게 된 것. 은행 대출 30억 원을 안고 있어 매달 1500만 원씩 이자를 내야 하지만 9월 이후 연체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 부실이 갈수록 커지면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른바 ‘한계기업’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정부의 지원 혜택이 ‘좀비기업’에 돌아가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상장기업 17.5%는 자체 생존 어려워”
건설사에 자재를 납품하는 인천의 중소기업 B사는 생사(生死)의 기로에 섰다. 건설 경기가 나빠지면서 대출 이자를 연체하다 보니 지난해까지 연 7%였던 대출금리가 11%로 올랐다. 더 큰 문제는 어음. 연초 결제대금을 갚기 위해 어음을 발행했다가 3개월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동아일보가 한국거래소 상장기업 773곳의 사업보고서를 나이스평가정보와 분석한 결과, 연간 이자부담액이 영업이익보다 많고 차입금이 영업이익의 3배를 웃도는 곳이 전체의 17.5%인 135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정도 재무구조의 기업이라면 특단의 구조조정이나 급격한 경기 호전 없이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평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 2010년 8.2%에서 올 상반기 5.7%로 떨어지며 실적이 부진한 게 가장 큰 이유다.
○ 약자 보호 명분에 구조조정 지연
한계기업이 이처럼 많아졌지만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두 기업의 탄탄한 실적에 가려져 기업부채 문제는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자산 순위 30대 대기업집단 중 삼성그룹(43%)과 현대자동차그룹(75.4%)을 제외한 28개 그룹 부채비율은 2007년 말 113.7%에서 지난해 말 115.4%로 오히려 나빠졌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삼성과 현대차, 더 넓게 봐도 5대 그룹 정도를 제외하면 운전자금이 부족해 빚을 늘리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좀처럼 구조조정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그나마 채권은행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에 밀려 정부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 이뤄진 중소기업 대출 일괄 만기연장 등이 기업들을 살리는 데는 도움을 줬지만 결국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실물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경기가 안 좋다는 이유로 지원만 계속 늘릴 경우 좀비기업만 늘어날 수 있다”며 “정책금융을 지원할 때보다 면밀하고 단호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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