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직구 해보셨나요? 국내서 구하기 힘든 옷-책-신발부터 항공·숙박 예약까지…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직접 구매하는 ‘직구족’들이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국내 소비자들이 올해 들어 카드로 결제한 금액은 상반기에만 1조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외 직구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습니다. 》
직장인 신정인 씨(32·여)는 요즘 한 달에 한 번 정도 인터넷으로 ‘해외 쇼핑’을 즐기는 ‘해외 직접구매(직구)’족이다. 신 씨는 “미국 의류 브랜드인 제이크루, 앤테일러 등을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입한다”며 “젊은 엄마들에게 인기가 좋은 아동용 버버리키즈 옷은 미국 백화점 사이트에서 쿠폰 할인 등을 받아 30∼40% 싸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불황에도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금액이 급증해 올 한 해 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된 통계가 없어 해외 관광객의 현지 소비가 부풀려지고 세금을 걷는 데 빈틈이 커지고 있다.
○ 연간 해외 온라인 카드 결제 2조 원 넘길 듯
5일 동아일보가 신한카드에 의뢰해 최근 4년간 신한카드 고객의 해외 온라인 사이트 결제 금액을 확인한 결과, 2009년 상반기(1∼6월) 256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약 10.2배인 2634억 원으로 증가했다. 전체 해외 신용카드 사용액 중 온라인 결제 금액의 비중도 같은 기간 9%에서 42%로 높아졌다. 신용카드사들이 공개하는 해외 신용카드 사용액 중 온라인 결제 내용만 따로 떼어내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디지털 환경과 외국어에 능통한 20, 30대를 중심으로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하는 ‘해외 직구’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며 “스마트폰 보급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등으로 해외 온라인 카드 결제 수요가 증가한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신한카드는 국내 신용카드 결제의 21%를 차지한다. 이를 근거로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카드로 결제한 금액은 상반기에만 1조3000억 원에 이른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올해 연간 기준으로 2조 원을 넘길 가능성도 크다.
○ 미국이 대세, 중국이 다크호스
해외 직구로 살 수 있는 상품은 다양하다. 비싼 수입차 수리비를 줄이기 위해 수입차 부품을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매하거나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옷, 책, 신발, 가구, 과자부터 애견용 관절염 치료제 등을 주문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 인터넷 쇼핑몰이 인기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자상거래 수입물품 통관 금액의 70%는 미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결제한 것이다. 2012년 한미 FTA가 발효되면서 미국 인터넷에서 물건을 주문해 국내로 들여올 때 부과되는 관세(13%)와 부가가치세(10%)의 면세 한도가 200달러(한국으로의 배송료 제외)로 높아졌다. 다른 지역의 경우 면세 한도가 배송비를 포함해 15만 원이다.
해외 직구 배송대행 회사인 뉴욕걸즈 한국지사 임주빈 씨는 “해외 인터넷 쇼핑은 카드번호와 주소만 입력하면 결제가 가능할 정도로 간편한 게 장점”이라며 “11월 셋째 주 미국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 프라이데이를 앞두고 이용량이 더욱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유럽과 일본을 제치고 타오바오와 같은 중국 인터넷 쇼핑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상반기에 중국 인터넷 쇼핑몰 구매 금액이 미국에 이어 2위(11%)를 차지했다.
변정훈 씨(28)는 “트레이닝복, 신발이나 어머니가 부탁한 보온병, 도시락 등 주방용품을 중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했다”며 “국내에서 사는 제품의 상당수가 중국산인데, 인터넷으로 조금 더 싸게 사는 게 낫지 않느냐”고 말했다.
○ 면세 한도 이내 소액 ‘쪼개기’ 성행
직구족들은 통관 단계에서 부가가치세와 관세를 물지 않기 위해 면세 한도 이하로 물건을 쪼개 구매한다. 일부 해외 직구족들은 구매대행 업체를 통해 해외 인터넷 사이트 물건을 구매하면서 구입 가격을 면세 한도 이내로 줄여서 신고하기도 한다. 신한카드 기준 해외 인터넷 쇼핑몰의 평균 결제 금액은 건강식품을 살 수 있는 ‘아이허브’가 8만 원,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이 7만4000원, 아이 장난감을 살 수 있는 ‘짐보리’가 12만9000원 등이었다.
해외 인터넷에서 소프트웨어와 같은 서비스 상품을 구매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상품을 구매할 때는 통관 절차가 필요 없다. 이창주 씨는 3년 전 스마트폰을 구입한 뒤로 한 달에 한 개꼴로 해외 앱스토어에서 유료 애플리케이션을 구입한다. 처음에는 1, 2달러짜리 간단한 게임 앱을 구입하다가 요즘엔 10달러 안팎의 일정관리나 사무용 앱을 구매하고 있다. 이 씨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활용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비싸더라도 고기능을 갖춘 앱을 사게 된다”고 말했다.
신한카드 기준으로 올 상반기 해외 온라인 카드 결제의 39%가 온라인 쇼핑이다. 이어 앱 구매(18%), 항공·숙박(16%), 관광·레저(9%), 교육·시험(7%) 등과 같은 서비스 결제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 깜깜이 통계가 만든 사각지대
해외 온라인 카드 이용이 급증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제대로 된 통계가 없다. 카드사들이 해외 신용카드 실적으로 뭉뚱그려 통계를 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잡힌 통계는 여행수지를 왜곡시킨다. ▼ 미국서 직접 구입땐 200달러까지 면세 ▼
한국은행 관계자는 “해외 신용카드 이용 실적을 여행수지에 반영하는데 온라인 사용액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관세청의 전자상거래 통관 수입액을 반영해 수치를 조정하지만 이 또한 소액결제가 누락돼 실제보다 여행 지출 금액이 부풀려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여행수지에 반영된 전자상거래 수입물품 통관액은 4억9388만 달러지만 소액결제까지 포함하면 7억400만 달러로 늘어난다. 스마트폰 앱 구매와 같은 금액은 아예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내국인 출국자의 1인당 신용카드 사용액이 급증하고 여행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통계적 착시’가 나타날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해외 앱스토어에서 스마트폰 앱을 구매할 경우 부가가치세를 물리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으나 대상 금액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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