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중은행의 부실채권이 9월 말 기준으로 25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정부 산하 공공기관(예금보험공사)이 대주주인 우리은행의 부실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소유 은행이 기업 부실을 일부 떠안는 건 불가피하지만, 위험 관리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3분기(7∼9월) 말 국내은행 부실채권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은행 부실채권(3개월 이상 연체 기준) 규모는 25조8000억 원에 달했다. 2011년 1분기 말(26조2000억 원) 이후 2년 6개월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전체 대출에서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율은 1.80%에 달했다. 금감원이 제시한 연말 목표비율(1.49%)을 맞추려면 11조 원 규모의 채권을 싼값에 팔든지 손실처리해야 한다.
부실채권 비율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산업은행이다. 3월 말 1조7000억 원 규모였던 산은 부실채권은 9월 말 기준 3조2000억 원으로 6개월 사이 88.2%나 급증했다. 6월 말과 비교하면 3개월 사이 1조1000억 원 늘었다. 전체 채권 중 부실채권 비율도 산은은 3.25%로 국내 은행 중 유일하게 3%를 넘었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최악의 경우 올해 1조 원가량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준(準)국책은행인 우리은행은 부실채권 규모가 가장 크다. 9월 말 기준 5조3000억 원으로 2위인 KB국민은행(3조9000억 원)보다 1조4000억 원이나 많다. 부실채권 비율이 반 년 사이 1%포인트 가까이 증가해 2.99%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국내은행 평균 증가수준(0.34%포인트)의 2배에 달한다.
이들 두 은행은 사실상의 정부 소유 은행으로 기업대출이 많다는 게 공통점이다. 최근의 대출 부실이 대부분 기업에서 발생하다 보니 산은과 우리은행의 부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3분기 들어 STX, 동양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부실채권은 1조9000억 원에 달했다. 전체 부실채권 중 기업대출과 관련된 부실이 85.8%(22조1000억 원)에 이르렀다. 가계부채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실제 부실 가계대출 규모는 전체 부실의 13.5%(3조5000억 원)에 불과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STX, 동양그룹 등에서 신규 부실이 대거 발생했고 기존에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업에도 추가로 자금이 들어갔다가 부실이 일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산은의 고위 관계자는 “부실기업을 뒷받침하고 회생을 지원하는 것은 국책은행의 책무이자 숙명”이라며 “향후 경기가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들 두 은행이 정부 소유 은행이라는 이유로 위험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2011년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심사 문제로 감사원이 검찰에 고발조치했다. 올 국정감사에서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파이시티, 중국 화푸빌딩 등에 대한 부실 대출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산은 역시 수익이 급감하는 와중에도 채권단 관리 기업에 ‘낙하산 인사’를 잇따라 내려 보내는 등의 방만 경영이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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