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목표가격’ 인상 공세속 농민단체들도 “이번엔 더 올려야”
재정 곳간 축날 걱정에 정부는 난감
내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본격화되면서 정부의 쌀 목표가격 인상안이 정치권의 핵심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기준이 되는 가격(목표가격)을 정한 뒤 산지 쌀값이 그 밑으로 떨어지면 차액의 85%를 보전해준다. 목표가격이 높게 책정될수록 농민들이 받는 정부 지원금도 많아지게 된다. 원래 정부는 법령에 명시된 산식에 따라 80kg(한 가마)당 17만83원이었던 목표가격을 올해부터 4000원 인상된 17만4083원으로 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의 표를 의식한 민주당은 이보다 약 2만2000원이 더 많은 19만5901원, 새누리당도 18만 원대를 각각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농민단체들은 그간의 생산비 상승분을 감안하면 목표가격이 23만 원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과 농민들의 반발로 코너에 몰린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감해하는 상황이다. 쌀 목표가격의 과도한 인상은 정부 곳간을 심하게 축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계산에 따르면 민주당 안대로 목표가격을 올렸을 때 당장 내년에는 2400억 원의 직불금이 들어가고 2018년에는 소요재원이 무려 1조5000억 원으로 불어난다. 해가 갈수록 지출액이 급증하는 것은 직불금을 노린 농민들의 쌀 생산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쌀의 과잉생산은 쌀값 하락으로 이어지고 그러면 정부가 지불할 차액도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언뜻 보면 정부가 나라 재정만 생각한 나머지 농민들에게 야박하게 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최근 수년간 쌀 생산량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돼 왔지만 국민들의 쌀 소비량은 반대로 1982년 1인당 130kg에서 작년 69.8kg으로 30년 만에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여기에 국제협약에 따라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도 1년에 40만 t에 이른다. 수요 대비 공급이 넘쳐나는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을 위한답시고 목표가격만 무턱대고 올려놓으면 쌀값 폭락과 유통구조 붕괴로 오히려 농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진정 농가소득을 올리려면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지원하거나 기초연금 같은 복지제도를 더욱 탄탄히 하는 게 더 낫다고 농업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번 사례는 현 정부가 내세우는 복지재원 조성 방안이 얼마나 취약한지도 보여주고 있다. 세출 삭감, 세원 확대는 항상 이해 관계자의 반발,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국회가 한 해 수조 원이 들어가는 선심성 법률들을 마구 쏟아내는 요즘, 5년간 ‘마른수건을 짜내’ 135조 원의 공약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구호가 유난히 공허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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