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높으면 불황속에도 호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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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요구르트, 냉동 블루베리, 모발관리 앰풀, 러닝화, 로고 없는 핸드백의 공통점은?

손가락 길이만 한 앙증맞은 병(65mL 용량)에 담긴 ‘옛날 요구르트’는 롯데마트의 효자상품 중 하나다. 한국야쿠르트 등 여러 업체가 생산하는 이 제품은 예전에도 꾸준하게 인기를 끌어왔다. 하지만 2008년 말 글로벌 경제위기 직후부터 그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옛날 요구르트’의 올해 1∼10월 매출은 2009년 같은 기간보다 21%나 늘어났다. 같은 기간 프리미엄 요구르트 매출은 7.6% 증가하는 데 그쳤다. 떠먹는 요구르트 매출은 9.1%나 줄었다.

‘옛날 소시지’로 불리는 분홍색 어육 소시지의 매출도 4년 전보다 28.6% 늘었다. 비엔나소시지(1.0%)나 햄(―8.9%)과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복고 열풍’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근 몇 해 동안 식품 시장의 대표적 키워드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소비자들은 잘 모르는 신제품보다 ‘값싸고’ ‘검증된’ 옛날 상품에 지갑을 여는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들지 않는 ‘셀프형’ 상품, 고가 상품 대비 품질은 유사하지만 가격은 싼 ‘플랜B’ 상품 등도 불황 기간에 사랑받는 ‘불황친화형’ 제품이다.

<가성비 높은 제품의 특징>

[1] 복고 검증된 옛 상품에 지갑 열려
[2] 플랜B 비싼 사골 대신 돼지뼈 선호
[3] 셀프 주택 보수도 내 손으로 직접
[4] 저비용 원피스 한벌로 다양한 연출

동아일보가 2009년 이후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주요 유통업체의 매출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불황기에 주목받는 제품의 공통점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가 높은 제품들이었다.

○ 복고·장수 상품의 힘

이마트에서도 복고 상품의 인기가 높았다. 올해 1∼11월(14일까지)의 단팥빵과 곰보빵, 크림빵 매출은 2011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190%가 늘어났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도 복고형 상품의 매력 포인트다. 분홍 소시지의 가격은 100g당 500원 안팎으로 햄의 3분의 1 수준이다.

30년 이상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장수 브랜드’들도 불황 속에서 오히려 꽃을 피우고 있다. 롯데마트가 부라보콘과 에이스 크래커, 베지밀, 가나초콜릿, 오뚜기카레 등 10개 장수 품목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 최근 2년 동안의 매출 신장률이 22.2%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대형마트 업계 전체의 매출 신장률(―5%)과 비교하면 눈부신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재문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불황기 소비자들은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기보다는 품질이 검증된 장수 상품을 사면서 자신의 ‘안전한 소비’ 행태에 안도하는 경향이 짙다”고 설명했다.

○ ‘플랜B’와 ‘셀프 상품’에 주목하라

불황에는 소비 욕구를 100% 충족시키는 ‘플랜A’ 상품의 대체재인 ‘플랜B’ 상품의 판매도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올여름 이마트에서는 한우 사골 대비 4분의 1 가격인 돼지 등뼈가 대체 보양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올해 매출은 2011년에 비해 36% 뛰었다.

냉동과일 역시 2년 전에 비해 99.7%의 신장세를 기록하며 대표적인 ‘불황친화형’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수입 과일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에 생과일의 비싼 국내 판매가 때문에 구입을 망설이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대체재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칠레산 블루베리 생과일의 가격은 100g당 4700원 내외로 냉동(780원)의 6배가 넘는다.  

[5]브랜드 거품 빠진 실속 핸드백 인기

최근에는 소비자가 직접 미용이나 인테리어를 해결하는 ‘셀프’ 상품의 인기도 높다. 주부 김희영 씨(36·서울 관악구 신림동)는 이전에 두 달에 한 번꼴로 미용실에서 모발 관리를 받았지만, 6개월 전부터는 모발 관리 앰풀을 직접 구입해 ‘셀프 관리’를 하고 있다. 김 씨는 “미용실에 다닐 때보다 비용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마트에서는 올해 들어 소비자가 가정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살롱케어용 헤어 제품 매출이 2년 전 대비 177% 늘었다.

주택의 보수 및 인테리어를 직접 해결하려는 이들이 늘면서 벽지(315%), 보수 용품(55%), 페인트(17%) 매출도 2년 전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올겨울엔 강추위가 예상되면서 소비자가 직접 시공하는 단열시트 등 ‘불황형 단열 용품’이 일찍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 ‘로고리스 명품’ 대세

최근 1년 새 백화점 업계가 브랜드 로고가 두드러지지 않는 ‘로고리스(logoless)’ 패션 아이템을 적극 들여오는 것도 불황 장기화로 소비의 ‘거품’이 빠진 것과 관련이 깊다.

지난해 4월 현대백화점에 입점한 발렉스트라와 헨리베글린 등 ‘로고리스’ 핸드백의 올해 매출(1월∼11월 14일)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 신장했다. 올해 명품 잡화 부문의 평균 신장률은 6.2%에 불과하다.

옷 한 벌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원피스와 저렴한 ‘맨몸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러닝화도 불황에 강한 아이템으로 꼽혔다. 올해(1월∼11월 14일) 롯데백화점의 원피스 매출은 2009년 대비 40%, 현대백화점의 러닝화 매출은 135% 늘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 몇 년 새 이어진 불황으로 ‘가성비’란 말이 일반 소비자 사이에서도 본격적으로 통용되기 시작됐다”고 말했다.

김현진 bright@donga.com·권기범 기자
#복고열풍#셀프 상품#저비용#가성비#플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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