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속에 갇힌 금융개혁 법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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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쟁-금융당국 무기력 겹쳐… 금융소보원 신설 등 연내처리 ‘감감’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정책금융 체계 개편 등 금융당국이 야심 차게 추진했던 금융개혁 정책들이 정치권의 벽을 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두 개편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정책 윤곽을 토대로 금융위원회가 세부 내용을 만든 것들이다.

올해 말로 효력이 끝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대부업법에 대해서도 일몰 연장을 위한 국회 논의가 공전(空轉)을 거듭하고 있다. 여야 간 소모적 정쟁이 이어지고 금융당국은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면서 각종 민생 법안과 개혁 정책에 대한 논의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다.

20일 국회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관련 법안 상정을 위해 이달 18일로 예정됐던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는 12월 2일로 연기됐다. 국정감사 등을 빼고 나면 정무위 법안 논의는 6개월 가까이 ‘개점휴업’이다. 여야는 밀려 있는 제출 법안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내달 정무위를 열더라도 일단 8월 이전에 제출된 법안 위주로 상정할 방침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금융위가 ‘해묵은 현안 과제를 해결하겠다’며 내세운 개혁정책은 연내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대표적인 게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이다. 금융위는 기존 금감원을 보완해 소비자 보호 기능을 강화하려 했지만 박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해 금소원 신설안이 나왔다.

당초에는 국정감사 직후 법안을 상정해 연내에 처리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여야 정쟁으로 회의가 잇따라 미뤄져 연내 처리와 내년 7월 금소원 출범이라는 목표는 물거품이 됐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동양그룹 사태에서 보듯 소비자 보호가 부실해 피해가 커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지금처럼 국회에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개혁 동력은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 통합안은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조차 하지 않았다. 정금공 측의 반발과 “공사를 부산으로 이전해 선박금융 지원 기관으로 바꾸자”는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의 주장에 막혀 논의가 멈춰 있다. 한 중소기업의 대표는 “내년 사업계획을 짜려면 어떻게 자금을 마련할지부터 고민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어디에 자금 지원을 신청할지조차 갈피를 못 잡겠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안에 처리해야 하는 이른바 금융민생 법안도 통과를 장담하기 힘들다. 대표적인 게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연장안이다. 이 법이 없으면 부실기업 채권을 가진 채권단이 100% 동의해야만 기업 재무구조 개선(워크아웃)에 돌입할 수 있어 신속한 구조조정이 어렵게 된다. 대부업 대출이자를 연 39% 이하로 제한하는 대부업법도 올해 말로 ‘일몰’이 도래해 연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논란이 있는 법안을 시간에 쫓겨 처리하는 게 옳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인철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조직을 개편하는 것이나 이해 당사자 간 논란이 있는 법안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졸속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며 “정치권이 정쟁으로 시간을 보낼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안을 만들기 위한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금융개혁#소비자보호#금융#정책#기촉법#대부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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