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글로벌 피자체인인 ‘도미노 피자’는 놀라운 혁신을 감행한다. 당시 고객들 사이에서 ‘최악의 피자’로 분류되던 자신들의 피자 맛 개선을 위해 비판적인 소비자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적나라한 고객들의 목소리를 전 경영진과 본사 셰프가 한자리에 모여 경청했다. “전자레인지에 조리해 먹는 냉동피자만도 못하다”, “피자에서 골판지 맛이 난다”는 등 혹평이 쏟아졌다. 임직원들은 변명하려 들지 않았다. 그 목소리 그대로 주방에 써 붙이고 수개월간 연구해 ‘완전히 새로운 피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2011년 ‘최고의 피자’라는 평을 듣게 됐다. 하지만 사실 이보다 훨씬 앞선 2005년, 이미 한국에서 한 보험 회사가 똑같은 방식으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가혹한 방식으로 혁신을 시도했다. ‘고객패널제도’를 국내 최초로 도입해 ‘가입자 수 답보 상태’라는 위기를 정면 돌파한 1위 보험사, 삼성화재 얘기다. DBR 141호에서는 삼성화재의 고객패널제도를 집중 분석했다. 이를 요약한다. 》
○ 삼성화재의 위기와 고객패널제도
삼성화재는 2002년 ‘삼성 애니카’ 자동차 보험을 출시해 국내 최초로 보험 브랜드화에 성공했다. 이듬해 국내 최초로 통합형 보험상품인 ‘삼성 Super 보험’도 출시했다. 누가 봐도 승승장구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위기의 징후를 느끼고 있었다. 시장점유율 감소는 ‘다이렉트 보험’과 ‘외국계 회사’의 대대적인 시장 공략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보험수요가 분명 늘고 있음에도 가입자 수가 답보 상태를 보이기 시작하는 건 큰 문제였다. 부동의 1위 보험사로서는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이때 한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소비자만족도 조사에서는 문제점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상황임을 감안해 약 10명의 패널을 선발해 실제 4∼6개월간 직접 보험 가입 과정을 체험하게 하고 이들의 의견을 듣자는 것이었다. 삼성화재가 1년에 두 번씩 운영하는 ‘고객패널제도’는 2005년 봄 탄생했다. 제도의 도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10명도 안되는 패널이 과연 고객들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제기됐고, ‘전문가 연구나 소비자 조사로도 파악하기 어려운 걸 과연 일반 고객들의 체험을 통해 알아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왔다. 그러나 경영진의 의지는 확고했다.
○ 낯 뜨거울 정도의 적나라한 비판들
2005년 9월, 주부와 직장인 등으로 구성된 첫 고객패널단의 발표일. 삼성화재 임원진 60여 명은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고객들의 비판 수준은 무엇을 예상했든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삼성화재는 빛 좋은 개살구다”, “경쟁사에 대한 추천은 아기 엄마들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지만, 삼성화재는 단 한 건도 검색되지 않는다” 등 충격적인 내용이 이어졌다. 관련 부서마다 난리가 났다. 고객패널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삼성화재는 ‘고객의 솔직한 비판’만 한 혁신 동력은 없다고 판단했다.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제도를 도입한 지 수년이 지나고 매년 두 기수의 고객패널단이 탄생했다. 비판의 칼은 무뎌지지 않았다. 보험설계사와의 상담, 대리점 현장, 실제 보험 처리 과정에서의 모든 문제가 낱낱이 드러났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대 교수는 “패널조사 제도의 경우 패널의 수를 갖고 대표성을 논하는 사람들에 의해 좌초되기가 쉬운데, 삼성화재는 한 명의 패널 뒤에 1만 명의 숨은 고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제대로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쓰디 쓴 약의 효과, 가입자 수와 이익의 증가
고객패널제도는 삼성화재 입장에서 쓰디 쓴 약이었지만 조직은 어느덧 고객 목소리에 의해 더욱 건강해지고 있었다. 매년 2회씩 진행된 패널발표회에서 나온 제안들은 진지하게 검토됐고 획기적 개선안과 고객 요구에 맞춘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했다. 패널활동 결과와 제언에 따른 경영개선활동 건수만 올해까지 총 304건에 이를 정도다. 2009년 탄생한 여성을 위한 자동차보험 ‘애니카 레이디’, 2010년 보장 내용을 강화해 내놓은 ‘가정종합보험’ 등은 모두 고객패널의 제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또 지난해 하반기 패널 제언을 토대로 올해 4월에는 보장 내용을 대폭 개선한 ‘자녀보험’도 나왔다. 이런 노력은 곧바로 실제 가입자 수와 이익의 증대라는 결정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550만 명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던 고객 수는 고객패널제도 도입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1년에 700만 명을 넘겼다.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거둬들인 전체 보험료를 의미하는 ‘원수보험료’는 2007년 9조 원대에서 지난해 16조 원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세전이익 역시 2007년부터 빠른 증가세를 보이면서 지난해 1조 원을 넘겼다.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중요한 성과도 나타났다. 조직 내에 자연스레 ‘고객 중심의 사고와 전략’이 스며든 것이다. 여 교수는 “사무실에 ‘고객중심’이라고 써 붙이고도 자기 편한 대로 일하는 게 조직의 습성”이라며 “고객패널제도를 통해 삼성화재는 ‘고객중심 철학’을 조직에 확실히 심었다”고 분석했다.
○ ‘고객중심 철학’, 중국시장 성공의 발판으로
삼성화재 김창수 사장은 국내에서 조직 혁신과 서비스 개선의 주요 동력이 된 고객패널제도를 중국법인에도 도입했다. ‘삼성’이라는 글로벌 브랜드의 ‘프리미엄’만 믿고 있다가는 언제든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수 있다는 걸 2000년대 중반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 사장이 고객패널제도 도입과 더불어 ‘중국법인 고객만족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도록 한 것도 중국시장 성공전략의 일환이다.
삼성화재는 이를 토대로 중국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한 보험 서비스 상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올해 5월 국내 보험사 최초로 설계사를 통하지 않고 가입하는 ‘다이렉트 보험’인 ‘삼성직소차험(三星直銷車險)’을 중국에 출시했고, 현재 또 다른 혁신적 상품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국가별·지역별 문화의 차이를 감안하되 ‘고객의 실질적인 요구와 목소리’는 반드시 반영돼야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지난 10년간의 ‘고객패널제도’가 준 가장 큰 교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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