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이 출연했던 영화 ‘아비정전’의 주제곡 ‘마리아 엘레나’가 흘러나오자 쇼트커트 머리에 흰색 민소매 티셔츠, 검은색 짧은 바지를 입은 여성이 혼자 맘보춤을 추기 시작한다. 장국영이 춤추던 장면을 그대로 옮겼다. 흑백 화면 속에서 노래와 춤이 끝나자 ‘mook 무크’라고 나온다.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함을 묘사한 제화 및 잡화업체 무크의 TV 광고는 1993년 화제가 됐다. 1992년 혜성처럼 등장한 무크는 당시 이른바 ‘신세대’와 ‘X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무크는 소비자들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엘칸토의 사내벤처로 출발한 무크는 최근 ‘제2의 사내벤처’를 통해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국내 제화업계에서 최초로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유아더디자이너(you are the designer)’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내놓고 20, 30대 고객을 잡겠다는 것이다.
홍창완 무크 대표는 20일 “주 5일제 때문에 캐주얼화가 유행하고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인기를 얻으며 기성 제화업계는 위기 상황에 처했다”며 “무크의 제품 영역을 확장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유아더디자이너를 통해 제2의 창업을 성공으로 이끌겠다”고 말했다.
○ 1990년대 ‘신세대’ 유행 이끈 무크
1980년대 말 국내 제화시장은 엘칸토,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등 3대 정장화 브랜드와 랜드로바, 영에이지 등 2대 캐주얼화가 이끌고 있었다. 엘칸토 창업자 김용운 전 회장의 장남으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영석 전 무크 사장은 20, 30대 직원 5명을 모아 젊은 세대를 위한 브랜드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3년간의 준비 끝에 ‘블랙 코디네이션’이라는 콘셉트로 출발한 무크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서울 중구 명동의 3층짜리 매장에서는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줄을 섰다. 사이즈가 안 맞아도 “일단 확보하고 나중에 교환하겠다”며 사갈 정도였다. 구두 앞코가 뭉툭하고 밑창이 넓어 일명 ‘도널드덕 슈즈’로 불렸던 맘보 구두도 대유행했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와 함께 위기가 찾아왔다. 소비가 침체된 데다 모회사 엘칸토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무크도 함께 어려워졌다. 1995, 1996년 700억 원을 넘던 매출은 1998년 200억 원대로 내려앉았다. 부진한 매출을 타개하기 위해 백화점에 입점한 것은 오히려 독이 됐다. 구두 매장에만 입점할 수 있었던 탓에 구두, 지갑, 벨트, 의류 등 토털 브랜드를 지향하던 무크가 단순 구두 브랜드로 전락했다. 브랜드 정체성은 약화됐고 ‘무크=맘보 구두’라는 이미지만 남았다.
○ 구두와 ICT의 만남
2000년대 들어서 온라인몰과 대리점을 통해 영업을 해오던 무크는 ICT를 이용해 제2의 창업에 나섰다.
2012년 소비자가 구두의 코, 굽, 높이, 장식, 색상, 가죽 등을 직접 골라서 디자인할 수 있는 앱 유아더디자이너를 내놓았다. 이 앱을 통해 30억 가지 구두를 만들 수 있고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남들에게 자랑할 수도 있다.
지난해 애플 iOS, 올해 안드로이드 버전을 각각 내놔 총 2만8000건이 다운로드 됐고 50만 개의 디자인이 등록됐다. 지난해 8월 ‘코리아스타일위크’에 참여하기 위해 디자인을 공모한 뒤 5개를 실제 구두로 제작해주는 이벤트에는 1주 동안 2700건이 올라오기도 했다.
무크는 내년 봄·여름 시즌부터 유아더디자이너에 일반인들이 올린 디자인 중 50개를 선정해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계획이다. 홍 대표는 “일반인을 디자이너로 생산 과정에 참여시키고 구두 수익 중 일부를 구두를 디자인한 일반인에게 로열티로 지급할 것”이라며 “구두와 ICT, 프로슈머가 만나 ‘소비자의, 소비자에 의한, 소비자를 위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두뿐 아니라 보석, 모자, 가방 등으로 분야를 다양화한 뒤 유아더디자이너를 분사해 독립회사로 키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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