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대기업 보유 전용기의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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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사장님 전용? 임원-부장도 탑승
초호화 시설-인테리어? 비즈니스석 수준
기내 음식 서비스는? 원하는 메뉴 신청

미국 보잉이 자사의 항공기 ‘B737-700’을 개조해 만든 ‘BBJ’(사진 위)와 실내. 100명 이상이 탈 수 있는 항공기를 별도의 침실이나 집무실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실내공간이 넓고 안락한 비즈니스 전용으로 만들었다. 항속거리가 긴 것도 특징이다. 추가 연료탱크를 붙이느냐, 인테리어를 얼마나 고급스럽게 하느냐에 따라 대당 가격이 700억∼1000억 원에 이른다. 국내 기업 중에는 삼성과 현대자동차, 한화그룹이 보유하고 있으며, 한진그룹은 이를 임차하고 있다. 보잉 홈페이지
미국 보잉이 자사의 항공기 ‘B737-700’을 개조해 만든 ‘BBJ’(사진 위)와 실내. 100명 이상이 탈 수 있는 항공기를 별도의 침실이나 집무실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실내공간이 넓고 안락한 비즈니스 전용으로 만들었다. 항속거리가 긴 것도 특징이다. 추가 연료탱크를 붙이느냐, 인테리어를 얼마나 고급스럽게 하느냐에 따라 대당 가격이 700억∼1000억 원에 이른다. 국내 기업 중에는 삼성과 현대자동차, 한화그룹이 보유하고 있으며, 한진그룹은 이를 임차하고 있다. 보잉 홈페이지
지난달 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차 공장과 슬로바키아 질리나의 기아차 공장, 체코 노소비체의 현대차 공장,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현대·기아차 유럽판매법인과 유럽기술연구소 등 유럽 4개국의 해외사업장을 순회했다. 업무보고를 받고 현지 주재원과 만찬까지 했다.

정 회장이 유럽 4개국을 순방하는 데 걸린 기간은 3박 5일. 전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정이다.

수백억 원에 달하는 항공기를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타고 전 세계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전용기는 ‘부의 상징’ 중 하나다. 일반인들은 평생 타볼 일이 없는 전용기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전용기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연간 운영비용만 수십억 원이지만…

일반인들이 타는 비행기가 정기 노선을 정해진 시간에 이동하는 고속버스라면 전용기는 자가용 승용차와 같다. 공항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원하는 시간에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전용기의 가장 큰 장점이다.

2009년 방영된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선 재벌그룹 후계자가 자신의 전용기를 타고 즉흥적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장면이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전용기는 항공사들이 운영하는 정기선이나 부정기선과 달리 운항허가 등이 비교적 간단한 편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당장 오늘이나 내일이라도 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용기를 이용하면 직항편이 없더라도 환승할 필요 없이 바로 해당 도시에 갈 수 있다. 동선 자체가 대외비인 그룹 총수들이 외부 노출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점과 항공사 정기편보다 간편하게 출입국 수속을 밟을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이 연간 수십억 원의 비용을 들여 전용기를 보유하는 이유다.

현대차 공영운 홍보실장(전무)은 “정 회장의 유럽 4개국 순방은 항공사 항공 스케줄에 맞춰 이동하려면 최소한 8일에서 9일은 필요한 일정이었다”며 “전용기는 출장으로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우기 힘든 경영진에게 굉장히 효율적인 일정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쌍용그룹 최초 도입, 5개 그룹 6대 보유

전용기가 보편화된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 기업들이 전용기를 도입한 것은 불과 2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 전용기를 들여온 건 쌍용그룹이 최초다. 1991년 캐나다 봉바르디에의 자가용 항공기인 ‘챌린저’기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말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봉바르디에의 ‘챌린저’기를 보유했지만 그룹이 해체되면서 매각했다.

1995년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은 2200만 달러, 당시 환율로 170억 원을 들여 14인승 ‘걸프스트림 4-SP‘(G-4)를 들여와 전용기로 이용했다. 한진그룹은 2007년부터 이 비행기를 전용기 임대사업용으로 활용한 뒤 최근 매각했다.

현재 전용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모두 5곳이다. 삼성그룹은 유일하게 미국 보잉의 B737-700을 개조한 ‘BBJ’(Boeing Business Jet·보잉 비즈니스 젯)와 봉바르디에의 ‘글로벌 익스프레스’ 등 2대를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익스프레스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의 전용기로 유명하다. 현대차그룹과 한화그룹은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BBJ를 갖고 있으며 LG그룹과 SK그룹은 각각 ‘걸프스트림’을 운영 중이다. 한진그룹은 전용기 임대 사업용으로 BBJ와 글로벌 익스프레스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가격이 비싼 전용기는 삼성과 현대, 한화가 보유하고 있는 BBJ다.

BBJ는 100∼140명이 탑승할 수 있는 B737-700 기종의 내부를 10∼20석으로 개조하고 운항거리를 늘리기 위해 추가 연료탱크를 장착한 대표적인 전용기 모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BBJ는 어떻게 개조했느냐에 따라 대당 700억 원에서 1000억 원가량 한다”고 말했다. 전용기는 처음 구입할 때도 큰 비용이 들지만 운영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이 관계자는 “500억 원짜리 비행기라면 10년 운영비용이 비행기 값인 500억 원이 든다고 보면 된다”며 “보통 전용기 한 대당 운항·객실 승무원과 정비사 등을 포함해 20명 정도가 근무한다”고 설명했다.

전용헬기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삼성이 4대로 가장 많은 헬기가 있으며 LG와 포스코, 현대차가 2대씩, 대우조선해양과 한화케미칼이 각각 1대를 보유하고 있다. 헬기는 항속거리가 짧기 때문에 국내 사업장을 이동할 때 쓰인다.
부장급도 탈 수 있다

한 번 뜰 때마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드는 만큼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전용기는 주로 그룹 총수들이 이용한다. 이 때문에 ‘총수 전용 비행기’라는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한 종합편성채널에선 기업 전용기의 공항 출입국기록을 분석해 그룹 전용기가 휴양지로 유명한 세이셸과 하와이를 방문한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룹에선 총수뿐 아니라 최고경영자(CEO)나 고위 임원은 물론이고 때에 따라서는 직원들도 전용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부 그룹에선 ‘전용기’라는 용어 대신 ‘업무용 항공기’로 부르기도 한다. 부장 시절 전용기를 탑승한 적이 있는 한 그룹 관계자는 “부장 2년차에 남미 출장을 갔는데 마침 그곳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룹 전용기가 있어서 돌아오는 길에 탄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회장님은 없었지만 고위 임원들이 타고 있어서 오는 내내 긴장했었다”고 회상했다.

전용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기업인들은 대한항공이 2007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전용기 임대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승용차가 없는 사람이 ‘택시’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반인도 돈만 있다면 전용기를 타고 여행을 가는 호사를 부릴 수 있다. 물론 비용이 문제다. BBJ를 빌려 김포에서 제주를 1박 2일로 다녀오려면 약 80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김포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4박 5일로 다녀오려면 4억∼5억 원이 든다. 항공사가 운영하는 항공기는 해외 운항 시 영공통과 허가 등의 절차가 기업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항공기보다 까다롭기 때문에 넉넉하게 2주 정도 전에 예약을 해야 탈 수 있다.

주요 고객은 국내외 주요 기업 인사지만 의외로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기업가나 해외 공연에 가는 연예인 등도 자주 탄다고 한다. 대한항공 전세사업팀 김인경 차장은 “상장되지 않은 회사의 오너들도 종종 이용한다”며 “연예인들은 해외 공연 시 주관사에서 비용을 부담해 타곤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전용기를 빌려 국내에서 임대하는 사업을 운영 중인 ‘펀스카이’ 박용호 대표는 “아프리카에서 금광을 운영하고 있는 한 고객이 자신의 금광에서 폭동이 나 금광을 뺏길 위기라며 급히 예약 문의를 했다”며 “이 고객은 현장에서 3억 원을 내고 아프리카를 다녀왔다”고 말했다.

여행을 위해 전용기를 빌리는 극소수의 부유층도 실제로 있다. 김 차장은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전용기를 빌리는 사람도 있었다”며 “여행 목적을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여행인지 사업차 방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행선지를 보면 휴양지일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전용 헬기 역시 CEO나 고위 임원들이 주로 탄다. 삼성과 LG는 사업장을 오가는 ‘셔틀헬기’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그룹 헬기 1대가 매일 2차례씩 경기 수원사업장과 경북 구미사업장을 왕복한다. LG전자 역시 서울과 경기 평택, 경북 구미와 창원 등 주요 사업장을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헬기가 있다.

기업들은 해외 바이어 초청 시에도 전용기나 헬기를 사용한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2011년 이라크 신도시 개발 공사 수주를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을 그룹 헬기에 태워 우리가 개발했던 인천의 신도시를 보여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호화롭진 않더라”

캐나다 봉바르디에 ‘글로벌 익스프레스’의 외관(위 사진) 및 실내 모습. 글로벌 익스프레스는 삼성그룹이 전용기로 보유하고 있으며 한진그룹도 임대용으로 운영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전용기로도 알려진 이 비행기의 가격은 대당 500억∼600억 원 수준이다. 봉바르디에 홈페이지
캐나다 봉바르디에 ‘글로벌 익스프레스’의 외관(위 사진) 및 실내 모습. 글로벌 익스프레스는 삼성그룹이 전용기로 보유하고 있으며 한진그룹도 임대용으로 운영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전용기로도 알려진 이 비행기의 가격은 대당 500억∼600억 원 수준이다. 봉바르디에 홈페이지
전용기 내부는 10여 명이 탑승할 수 있는 가죽으로 된 좌석과 원목 가구가 들어가는 등 인테리어가 고급스럽다. 일부 전용기에는 침대나 집무실 등이 별도로 마련돼 있기도 하다. 삼성그룹이 올해 도입하는 신형 BBJ는 인테리어 비용만 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전용기의 실내는 과연 얼마나 호화로울까. 의외로 전용기에 탑승해본 기업 임원들은 “기대했던 것보다 별거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A그룹 임원은 “처음 탔을 때는 솔직히 으리으리할 줄 알았고 기대도 컸는데 막상 타 보니 비즈니스석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B그룹의 임원도 “좌석이 모두 가죽 소파이고 원목 책상 등 인테리어는 꽤 괜찮았지만 요즘은 항공기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도 좋지 않으냐”며 “업무 중심으로 꾸며져 있어 전반적인 시설이 항공기 일등석보다는 좀 처지고 비즈니스석 정도 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식사 등 기내 서비스는 어떨까. B그룹 임원은 “업무를 보러 가는 출장이어서 오히려 간단하게 식사를 했고 와인 등 술도 전혀 없었다”고 했다. C그룹 임원은 “객실 승무원은 일반 항공기 승무원보다 나이가 좀 많고 노련해 보였다. 하지만 일등석을 타면 시시각각 승무원이 와 불편한 점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묻곤 하던데 전용기 승무원은 그렇게 손님을 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용기인 만큼 일반 항공기보다 편리한 점도 있다고 한다. A그룹 임원은 “아무래도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 다 아는 사이고, 우는 애도 없으니 마음은 좀 편했다”고 말했다. B그룹 임원도 “다른 승객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하거나 회의를 할 수 있고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시시각각 현지 상황이나 국내 상황을 보고받으며 갈 수 있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반면 C그룹 임원은 “오너나 상사를 모시고 가는 자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긴장되고 불편할 수도 있다”며 “여객기를 타면 탑승하고 있는 시간 동안은 완전히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전용기를 타는 건 업무의 연장 같았다. ‘차라리 여객기 타고 갈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룹의 총수는 주로 맨 앞자리에 앉는 경우가 많지만 맨 뒤에 앉거나 앞에서 3분의 1 정도 되는 자리에 앉기도 한다고 한다. 또 총수가 앉는 좌석 좌우에 다른 좌석이 배치돼 있지 않다는 게 전용기를 타 본 기업 임원들의 전언이다.

2007년부터 3년간 대한항공 전용기의 승무원으로 근무했던 부천대 항공서비스학과 김모란 교수는 “기업 총수나 CEO들은 기내에서 주로 업무 보고를 받거나 회의를 하고, 신문을 읽는 일이 많다”며 “외국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고급 샴페인을 마시거나 파티를 여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고 기내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일등석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미리 주문한다거나,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도록 기내 스케줄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편의는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비행기#대기업#보잉#전용기#글로벌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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