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움은 나의 힘”… 年매출 1000억 회사로 우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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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 동남은행 출신들이 세운 벤처 ‘웹케시’ 14년만에…

윤완수 웹케시 국내부문 대표(오른쪽)와 임직원들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신로 본사 회의실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 대표와 마찬가지로 임직원 중에는 금융회사 출신이 많아 웹케시는 은행권 업무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윤완수 웹케시 국내부문 대표(오른쪽)와 임직원들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신로 본사 회의실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 대표와 마찬가지로 임직원 중에는 금융회사 출신이 많아 웹케시는 은행권 업무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금산(金山)을 봤다.”

1999년 어느 날 석창규 씨(51)는 주택은행(현 KB국민은행)에 다니던 윤완수 씨(50)를 찾아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석 씨가 말한 ‘금으로 된 산’은 인터넷이었다. e메일을 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인터넷을 활용한 전자상거래가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석 씨는 인터넷에서 사업 기회를 본 것이다.

두 사람은 부산대 동문이자 1998년까지 동남은행에 함께 몸담았던 동료 사이였다. 석 씨는 윤 씨에게 같이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동남은행에서 나온 뒤 창업을 위해 부산대 창업보육센터에 조그만 사무실을 얻어놓은 상태였다. 그때만 해도 윤 씨는 이 조그만 사무실이 연매출 1000억 원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금융 관련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인 웹케시 이야기다. 석 씨는 현재 웹케시의 해외부문 대표를 맡고 있고, 2000년 합류한 윤 씨는 국내부문 대표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 IT 담당자들, 벤처에 뛰어들다

동남은행은 1989년 부산 경남 지역을 무대로 ‘제2의 중소기업은행’을 표방하며 세워졌다. 동남은행은 금융권에 IT 바람을 불게 한 주역이었다. 1994년 금융권 최초로 점포 창구의 단말기를 모두 PC로 교체했고 같은 해 IC칩 카드에 정보가 입력된 국내 최초의 전자화폐를 선보였다. 1997년 국내 첫 교통카드로 꼽히는 ‘하나로카드’ 시스템을 부산시와 함께 구축한 것도 동남은행이었다.

동남은행이 IT에 집중한 이유는 후발 은행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전자금융 분야에 다른 은행의 10배 규모인 100여 명을 배치했다.

그러나 동남은행은 1998년 금융권 구조조정 당시 퇴출은행으로 지정돼 주택은행에 인수됐다. 윤 대표를 포함한 직원 상당수는 주택은행으로 옮겼고 IT 인력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구조조정으로 동남은행 외에도 수많은 은행원들이 직장을 잃던 시절이라 금융업의 핵심 분야가 아닌 IT 인력들이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기는 어려웠다.

석 대표는 1999년 피플앤커뮤니티라는 벤처기업을 세웠고 이듬해 동남은행 전산부장 출신인 박남대 씨가 만든 웹케시와 회사를 합쳤다.

웹케시는 2000년 편의점에 현금인출기(ATM)를 설치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기를 설치하는 작업이라 초기 자금이 꽤 필요했다. 석 대표 등은 자금이 부족할 때면 옛 동남은행 시절 동료들을 찾아다녔다. 그때마다 동료들은 모아뒀던 쌈짓돈을 기꺼이 내줬다. 이렇게 웹케시의 주주가 된 동남은행 출신들은 50여 명으로 전체 주주의 약 10분의 1에 이른다.

웹케시는 2001년 국민은행의 기업 인터넷뱅킹 시스템 구축 사업을 수주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HP, IBM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을 벌였지만 국민은행은 웹케시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국민은행 실무자는 “계좌이체, 결제, 승인 등 은행의 복잡한 업무 처리 단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회사에 맡기자”며 임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이후 웹케시는 금융권의 IT 아웃소싱 관련 프로젝트의 상당수를 따낼 수 있었고 연매출도 100억 원을 넘어섰다. 2003년 회사는 ATM 관련 사업을 인적분할을 통해 분리한 뒤 석 대표와 윤 대표가 주도해 시스템통합(SI)과 금융 소프트웨어 분야에 집중하기로 했다.

○ 기업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서비스

2004년 윤 대표의 고민은 자금 관리였다. 거래 은행이 13곳이나 되다 보니 재무담당 직원은 아침마다 각 은행 홈페이지에서 입출금 명세를 출력해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윤 대표는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두 달 뒤 결과물이 나왔다. 전체 금융회사와 거래한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계좌 통합관리 시스템이었다.

“정말 편리한 시스템을 우리만 쓰기 아깝더라고요. 바로 상용화하기로 결정했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국내 최초 ‘디지털 자금관리 서비스’다. 일반 기업과 공공기관도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서비스로 그때까지 금융회사가 대부분이던 고객들이 다양해지는 계기가 됐다. 2006년에는 거래, 세무, 공공정보 등을 기업에 통합 제공하는 ‘쿠콘’ 서비스도 시작했다. 한 기업이 거래업체에 며칠마다 제품을 공급해야 하고, 세금은 얼마나 나올 예정인지 등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2010년에는 자영업자 등 개인 사업자를 위한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 플랫폼도 열었다. 그 사이 매출은 1000억 원을 넘어섰고 초창기 10명 안팎이던 직원도 600여 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석 대표가 해외사업을 전담하면서 해외 진출에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윤 대표는 “비록 동남은행이라는 직장은 사라졌지만 당시 배운 것들이 지금도 큰 자산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은행원은 입행하면 제일 먼저 90도로 인사하는 법부터 배웁니다. 그리고 계산이 1원이라도 틀리면 퇴근할 수 없습니다. ‘신의’, ‘성실’, ‘정직’이 웹케시를 지금까지 이끈 원동력입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동남은행#웹케시#IT#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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