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면서 원-엔 환율이 5년 2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주춤했던 엔화 약세가 다시 가속화되면서 세계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들의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25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오후 3시 현재 원-엔 환율은 100엔당 1042.3원으로 전날보다 7.99원(0.76%)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신호탄이 됐던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2008년 9월 12일 1032.2원 이후 5년 2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데도 원-엔 환율이 떨어지는 것은 달러 대비 원화 가치 하락보다 엔화 가치가 더 빠르게 하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달러당 98엔 수준을 유지했던 엔-달러 환율은 최근 빠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이날 오후 4시 15분 현재 달러당 101.87엔까지 올라갔다.
이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잇따라 추가 양적완화를 시사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구로다 총재는 22일 “엔화 가치가 과도하게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고 밝힌 데 이어 이날 한 포럼에 참석해 “경제에 상방 또는 하방 위험이 생기면 통화완화 정책을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최근 원-엔 환율 하락세 우려를 나타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연구기관장 간담회’를 주재한 뒤 기자들과 만나 “(원-엔 환율 등)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이 연중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원-달러 환율 하락에 이어 엔화 약세까지 가속화되면서 수출 기업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내 수출 주력품인 전자제품, 반도체, 자동차 등은 대부분 일본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품목들이다. 원-엔 환율이 하락하면 해외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한국 제품보다 높아져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올 한 해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으로 이미 상당 규모의 손실을 입은 상황이다. 실제로 25일 재벌닷컴이 공기업과 금융회사를 제외한 자산 상위 10대그룹 소속 83개 상장사의 환차손익 현황을 조사한 결과 올해 1∼3분기(1∼9월) 누적 연결 기준 순환차손 금액은 총 76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 이 회사들이 총 9570억 원 환차익을 거둔 것과 비교하면 작년 대비 1조7170억 원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그룹별로는 삼성의 손실이 2890억 원으로 가장 컸다. 지난해에도 1323억 원의 환율 손실을 입은 삼성전자는 올해 손해액이 2714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타격이 컸다. LG(2820억 원), SK그룹(2010억 원), 현대차그룹(1650억 원), 현대중공업그룹(420억 원), GS(190억 원) 등도 원화가치 상승으로 줄줄이 손실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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