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금융사에서 주식매매를 담당하는 직원 A 씨는 얼마 전까지 B 외국계 증권사 직원으로부터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이런 정보를 받았다. 외국계 증권사가 ‘큰손’ 고객으로부터 주식을 대량으로 사거나 팔아 달라는 주문을 받으면 또 다른 VIP 고객인 기관투자가에게 이 정보를 은밀하게 넘긴 것이다. 증권사가 대량 주문을 받으면 한국거래소(KRX)에 신고해 모든 투자자에게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규정을 어기고 중요한 거래정보를 ‘끼리끼리’ 공유한 것이다.
최근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무리한 영업으로 합법과 탈법 사이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대형 은행 직원들이 채팅으로 환율, 금리 등을 담합하고 고객 정보를 공유했다가 수백억 달러의 벌금을 무는 일탈이 반복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2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 들어 금융감독원 징계를 받은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과 증권사는 총 8곳이다. 1월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 서울지점과 도이치증권 한국법인, CLSA코리아증권 등이 고객정보 유출로 과태료 부과 등 징계를 받았고, 이달 14일에는 JP모간증권 서울지점이 같은 징계를 당했다. JP모간은 고객 6000여 명의 국내 주식거래 명세를 해외 직원들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했다. 1월에 징계를 받은 3개 회사도 모두 금융실명법이 규정한 고객정보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상적인 정보 공유 수준을 넘었기 때문에 중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일부 회사가 고객을 끌기 위해 다른 고객의 민감한 거래 정보를 ‘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영국 등에서 수백억 달러의 벌금이 부과된 글로벌 금융회사의 ‘온라인 채팅 담합행위’는 국내에서도 적발됐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서울지점은 전화와 메신저로 통화스와프 금리를 불법 사전 협의한 혐의로 과태료 5000만 원 등 중징계를 받았다.
금융당국이 한 회사에 중징계를 내려도 다른 회사가 같은 위반을 반복하는 일이 벌어진다. 2010년 이후 한국에서 고객정보를 빼내다 적발된 외국계 증권사는 12개.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증권사가 21개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이 법을 어긴 셈이다. ▼ “한국만 왜 문제 삼나” 국내법 무시 ▼
최근에는 골드만삭스, CS증권,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 등이 국내 법인을 통하지 않고 부실 의혹이 있는 금융상품을 팔던 정황이 포착돼 금감원 검사를 받았다. 해외 금융사가 직접 국내에서 영업을 하면 ‘무인가 영업’에 해당돼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외국계 금융회사의 반복되는 일탈은 국내 법 규정을 무시하는 관행, 금융시장 침체에 따른 실적 압박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 외국계 금융회사는 금감원 검사 과정에서 “외국계 회사들은 홍콩 등의 지역본부 지시를 받으면서 사실상 한 몸으로 움직인다”며 “다른 나라에서는 괜찮았는데 왜 한국에서만 문제를 삼나”라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외국계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계 자본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당국이 관리감독과 외부감사 등을 철저히 하는 등 외국계 금융회사 감독체제를 선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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