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이천공장에서 19년째 반도체 원료인 웨이퍼의 불량을 가려내는 일을 맡고 있는 이오남 씨(37·여·사진)는 회사에서 ‘명장님’으로 불린다. 지난해 11월 한국표준협회 국가품질경연대회에서 품질명장으로 선정된 뒤부터다.
품질명장은 장인정신이 투철하고 품질 향상을 위해 헌신한 산업 현장 근로자 가운데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 주는 대통령 명의의 명예 자격증이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선정된 1356명 중 여성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이 씨는 여성으로는 13년 만에 품질명장이 돼 회사 안팎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씨는 21일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공장에서 기자를 만나 “명장이 되는 것보다 명장으로 생활하는 게 더 어렵더라”며 지난 1년을 돌이켰다. ○ 명장 합격보다 힘든 명장 생활
이 씨가 명장에 도전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 3월. 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그는 8개월 동안 일과 육아, 명장시험 준비까지 동시에 하느라 숨 가쁜 날들을 보냈다. 사내 대학이 있었지만 회사 일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야 했던 그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그 대신 퇴근한 뒤 아이들을 돌보며 책과 인터넷으로 부족한 이론을 공부했다.
명장이 되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퇴근은 오히려 더 늦어졌다. 웨이퍼를 검사하는 일 외에 선배 명장들과 품질 개선 활동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작업 과정을 단축하기 위한 연간 프로젝트에도 새로 합류했다. 사내 교육에 강사로도 나서야 했다. 아무리 바빠도 후배 현장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하지만 이 씨는 “아직 ‘초보’ 명장이라 선배들에 비하면 하는 일이 적은 편”이라며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쉽지만 가정과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후배 워킹맘들에게 귀감이 되고, 강연을 통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2007년부터 비용 76억 아껴
이 씨가 현장 여직원들에게 남다른 애착을 갖는 것은 자신도 그들과 같은 고민을 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입사 3년째 되던 해에 외환위기를 맞았고 회사가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는 등 힘든 시기를 겪었다. 많은 동료가 떠났지만 그는 끝까지 일을 놓지 않았다.
이 씨는 “오히려 이때의 위기가 명장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 새 장비를 마음껏 들여올 수 없다 보니 품질 개선에 사활을 걸었죠. 만약 회사가 순탄한 길을 걸었다면 굳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았을 거예요.”
그는 지난 10여 년간 품질분임조 활동을 하며 현장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며 품질 향상에 힘썼다. 지난해 반도체 부품의 불량을 검사하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1억6000여만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는 등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그의 노력으로 아낀 비용만 약 76억 원에 이른다.
이 씨는 명장이 되고 나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회사에서 제2, 제3의 여성 품질명장이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산파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정년까지 현장에서 일하며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여성들도 정년을 채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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