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충남 천안시 성환시장에 5일장이 열리자 인근 성신초등학교 학생들이 현장 학습에 나섰다. 선생님의 질문에 2학년 학생들은 “햇빛을 전기로 바꾸는 태양광 발전 기계”라고 또박또박 답했다. 이날 학생들은 발전소 앞에 세워진 ‘일일 발전량’과 ‘이산화탄소(CO₂) 절감량’ 표시 등을 확인한 다음 시장 풍물패의 공연을 감상하는 등 변화된 전통시장의 모습을 직접 확인했다.
인구 3만 명의 작은 읍내인 성환시장 5일장에 새로운 명물이 등장했다. 장날에 상인과 손님들을 위해 설치된 공중화장실 지붕이 이제는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것이다. 그 덕분에 상인회는 연간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공용전기료 가운데 20%를 아낄 수 있게 됐다. 또한 이를 통해 전통시장의 낡은 이미지도 벗었다.
○ 태양광 발전으로 전통시장 전기료 아껴
이영래 상인회장(68)은 “단순히 비용을 아낀다는 의미보다 우리 고장의 기업이 인근 전통시장에 관심을 갖고 후원에 나선 점이 더 힘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성환시장은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부지방 최대의 5일장이었지만, 지금은 시장을 알리는 표지 간판조차 없을 정도로 낙후됐다. 주인을 찾지 못한 빈 점포도 20개나 된다. 만일 5일장마저 없었다면 진즉 사라졌을 시장이라는 얘기다.
성환시장의 변화를 위해 손을 잡아 준 기업은 국내 태양광발전 설비 산업의 선두 주자인 LS산전이다. 이 회사는 전국의 사업장마다 ‘1사 1촌’ ‘1사 1하천 가꾸기’ 등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LS산전 천안사업장은 인근 성환시장의 고충을 전해 듣고는 팔을 걷어붙였다. 이곳에서는 550명 규모의 직원이 태양광 시스템과 철도·교통시스템 등을 만들어 왔다.
올여름부터 LS산전 천안사업장 직원들이 성환시장을 정기적으로 찾아 애로점을 듣고 지원 방안으로 태양광 발전 설비를 골랐다. 전기료를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광기가 주는 세련된 외관이 낡은 전통시장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직원들이 틈틈이 현장에 나와 매달 300kW의 발전이 가능한 태양광 발전 설비 작업을 끝마쳤다.
이날 LS산전 천안사업장에서 일하는 문형일 과장이 시장 상인에게 발전 장비의 관리와 응급상황 시 긴급 대처 방법을 설명했다. 상인들은 이를 보고는 ‘신통방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동진 LS산전 태양광사업담당 상무는 “우리네 전통시장을 친환경 사업장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쳐 태양광 솔루션을 지원하게 됐다”며 “이곳을 시작으로 더 많은 전통시장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특산물도 팔고 향토 역사도 판다
성환시장도 여느 전통시장처럼 기나긴 침체기를 겪은 뒤 이제야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런데 변화의 방향이 여타 시장과는 달랐다. 1970년대 이전에 지어진 낡은 건물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보존 활용하자는 것이다.
일부 상인은 이 고장의 대표 상품인 성환 배, 참외, 순대와 같은 특산품을 시장의 대표 브랜드 삼아 대대적인 현대화 사업을 벌이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현대식으로 뜯어 고쳐 현대식 유통 상가와 경쟁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성환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살려 보존하는 것이 시장의 독특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성기 성환시장 문화사업단장(46)은 “과거 중부권 최대의 전통시장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보존하고 알리는 것도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성환시장의 역사는 근대식 시장이 정비되기 전인 1894년 청일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됐다. 우리나라 근대화를 알린 경부선과 국도 1호선이 성환시장과 바로 인접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일본강점기에는 이곳에서 직산금으로 불린 사금(砂金)이 거래되거나 수탈되는 현장이기도 했다. 상인회는 성환시장을 인근의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열사 기념관과 연계하는 관광코스로 만들 계획이다.
성환시장은 올해 초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이 지원하는 ‘문화관광형시장’ 육성 대상으로 선정됐다. 시장 개설 100주년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는 상인들과 지역민들의 뜻이 한데로 모인 결과다.
이에 따라 앞으로 3년간 대대적인 내실 다지기에 나선다. 특히 근대 문화유산을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문화 환경에 투자가 집중된다. 김 단장은 “성환시장에 오시면 우리 역사의 비극적인 장면을 체험할 수 있고 동시에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의 현장까지 맛볼 수 있는 생활역사문화관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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