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탁금 잡아먹는 전세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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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 투자용 자금 어디로 빠져나갔나 살펴봤더니…

《 자영업자 강모 씨는 지난달 집주인이 전세금을 대폭 올려달라고 요구하자 고민에 빠졌다.당장 가진 현금이 없는 데다 자녀 학교 문제로 이사를 가기도 곤란했다. 강 씨는 결국 증권사에 맡겨놓은 주식 투자 자금을 빼 전세금을 올려줬다. 하는 사업도 신통치 않아 당분간 주식투자를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모 씨는 최근 생활비에 쪼들리다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다. 지난해 회사 파업에 참여한 기간 동안 급여를 받지 못한 데다 올해 상여금이 일부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회사 구조조정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어서 소득이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전세난과 경기 침체가 주식시장의 자금 이탈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8일 동아일보와 KDB대우증권이 최근 10년간 주식투자를 위해 증권사에 맡겨놓은 실질고객예탁금과 수도권 전세가격지수 변동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전세난이 발생하면 예탁금이 급속도로 빠져나간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2년간 전세금 상승폭이 컸던 데다 체감경기가 나빠지면서 증시자금 이탈이 빨라졌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실질고객예탁금은 최근 28개월 동안 28조 원이나 감소했다. 2년 남짓한 기간에 매달 평균 1조 원씩 증시를 빠져나간 것은 이례적이다.

○ 전세난 때마다 증시자금 이탈

최근 10년 새 전세가격지수가 오르는 동시에 증시 예탁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간 현상은 △2005년 6월∼2006년 12월 △2009년 5월∼2010년 12월 △2011년 8월∼현재까지 등 세 번 나타났다.

세 번 모두 전세금 상승과 전셋집 품귀현상이 동시에 나타나며 ‘전세대란’을 겪은 시기다. 2005년 하반기에는 정부가 보유세,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자 주택 수요가 매매 대신 전세로 몰렸다. 2009년에는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에서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하면서 주택 구입을 포기하고 전세를 택하는 사람이 많아 전세난이 빚어졌다.

특히 전세난이 갈수록 악화된 최근 2년 사이에는 증시 예탁금이 2000년대 들어 가장 빠르고 큰 규모로 줄었다. 2011년 8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실질고객예탁금 순유출액은 28조 원으로 2005∼2006년(약 6조 원 순유출), 2009∼2010년(약 9조 원 순유출)보다 규모도 크고 기간도 길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주가가 올라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을 할 때는 예탁금이 계속 증권사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탁금이 큰 폭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투자자금 자체가 증시를 떠난다는 뜻”이라며 “이 돈들이 전세 시장으로 흡수되는 경향이 커 보인다”고 덧붙였다.

2003년 상반기∼2005년 상반기에는 예탁금 규모와 전세 시세가 함께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신용카드 대란의 여파로 각종 경기지표가 모두 하향곡선을 그렸기 때문이다.

전세난과 경기침체는 직접 투자뿐 아니라 간접투자나 장기 예금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직장인 윤모 씨(39)는 자녀가 대학에 진학할 때 쓰려고 3년 전부터 적립해 온 주식형펀드 2000만 원을 최근 환매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윤 씨는 “은행예금보다 기대수익률이 높은 펀드 상품에 가입했지만 전세금 때문에 빚을 내느니 투자를 줄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내년에도 전세금 오름세 지속”

이처럼 금융투자 자금이 전세금이나 생활비로 새나가면 장년층의 노후 대비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강창희 미래와금융 연구포럼 대표는 “전세금 상승으로 20, 30대 예비부부들이 자력으로 내 집을 마련하기 어려워지면서 50, 60대들이 자본시장에 모아둔 노후자금을 빼내 자녀 전셋값으로 대주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심할 경우 자녀에게 전세금을 지원하고 자신들은 은퇴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전세금 강세는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내년에도 전세금 자체는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상승률은 올해보다 둔화될 전망이어서 마땅한 투자처가 있거나 노후자금 마련이 시급한 경우에는 전세를 반전세로 바꿔 금융투자 여력을 일부 남기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예탁금#전세금#전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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