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도 ‘스펙 경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9일 03시 00분


건설사들 “불황 이길 묘수 찾아라”… 버튼 안눌러도 엘리베이터 호출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 설치하고… 발코니 보너스 면적 30% 제공도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아파트에 사는 회사원 오모 씨(42)는 한밤에 화장실을 사용할 때 윗집에서 가끔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윗집 화장실 배관이 오 씨 집 천장에 설치된 탓에 물 내리는 소리나 심지어 사람 목소리까지 들리기 때문이다. 오 씨 집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건설사는 시공하기 편리하다며 지금까지 이런 구조로 아파트를 지었다.

현대건설은 발상을 전환했다. 지난달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에서 분양한 ‘위례 송파 힐스테이트’ 화장실에 ‘층상배관’이라는 새로운 배관설계를 적용한 것. 아래위층 사이에 있는 콘크리트 바닥을 기준으로 아래층 천장이 아니라 위층 화장실 바닥에 배관을 설치하는 구조다. 기존 배관보다 시공이 복잡하고 공사비가 더 들지만 화장실 소음이 아래층으로 전달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주요 건설사들은 요즘 이처럼 아파트 ‘스펙 쌓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주택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수요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흔들어 놓기 위해서다. 생활이 더 편리해지도록 첨단시스템과 기술을 동원하는가 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까지 여러 가지 인증을 받기도 한다.

○ 스펙1=첨단시스템

삼성물산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옛 청실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래미안 대치청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전기자동차 충전 스테이션’을 설치하기로 했다. 소득 수준이 높은 강남지역에서 전기자동차 보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입주자가 충전 스테이션에 플러그를 꽂아 전기를 충전하는 동안 동, 호수,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전기료가 관리비에 자동으로 부과된다.

소형 리모컨처럼 생긴 ‘원패스’ 카드도 첨단시스템 가운데 하나다. 기존에는 아파트 공동 출입구나 가구의 현관 자물쇠 단말기에 카드를 갖다대야 문이 열렸지만 이 원패스 카드는 몸에 지니고 있기만 해도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엘리베이터도 자동으로 호출할 수 있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댄 후 원패스 카드에 주차한 위치를 입력해 놓으면 나중에 차량을 찾으러 갈 때 주차된 위치가 자동으로 표시되는 기능도 있다. 지하주차장에서 도난, 납치 등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원패스 카드의 버튼을 누르면 아파트 경비실로 비상 신호가 전송된다.

최근 강력범죄가 증가하자 ‘범죄예방 환경설계’ 인증 획득에 나서는 건설사들도 늘고 있다. 범죄예방 환경설계는 건축물의 설계 단계부터 범죄 노출 가능성을 줄이는 것. 아파트 옥외 배관에 덮개를 설치해 도둑이 밟고 올라오지 못하게 하거나 어린이놀이터를 단지 중앙에 배치해 부모가 창밖으로 자녀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현대 대우 SK 두산 동부건설 등이 지은 14개 아파트 단지와 공공시설이 이 인증을 받았다.

○ 스펙2=혁신적 평면·에너지 효율

대림산업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신반포 한신1차 재건축 아파트인 ‘아크로리버 파크’를 지난달 일반분양하면서 서울시에서 획득한 ‘재건축 우수디자인 1호 인증’을 적용해 발코니 면적을 일반 아파트보다 30% 더 넓게 설계했다. 재건축 분야에서 이 인증을 받은 건 대림산업이 처음이다. 발코니를 확장할 경우 입주민들은 전용공간을 평균 20m² 더 쓸 수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는 건설사도 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11월 위례신도시에서 분양한 ‘위례2차 아이파크’에는 옥상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고 고효율 단열재를 적용해 에너지관리공단으로부터 건축물에너지 효율등급 1등급을 받았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집에 투자해서 돈 버는 시대가 저물면서 이제는 좋은 성능의 편리한 아파트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아파트 거주 경험이 축적되다 보니 거주가치에 대한 소비자의 눈높이가 갈수록 올라가고 있고 건설사는 이를 충족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아파트#층간소음방지#주차장#층상배관#래미안 대치청실#아크로리버 파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